[르포]'해남산 활전복' 오후 1시 주문→새벽 4시 서울 도착..불붙은 배송전쟁

by전재욱 기자
2022.01.06 05:30:00

<다시 뛰는 2022 -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
쿠팡 로켓프레시 제휴한 전복 유통업체 다복수산
오후 1시까지 주문, 이튿날 새벽 살아있는 전복 배송
`물류 혁신` 모바일프레시로 단계 및 비용 절약 결과
지체없는 배송 덕에 발없는 전복이 사람보다 빨라

새벽 배송은 한국인 특유의 중추 신경을 자극한다. `빨리빨리 증후군`을 앓는 이들조차 침묵할 만큼 일말의 여지없이 `빠·르·다.` 이 시장은 신선식품을 품으면서 성장판을 더 열어제쳤다. 선도가 생명인 식품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노력으로 이뤘다기보다 시스템으로 체계화한 결과다. 산지의 어제를 오늘의 식탁으로 만드는 시스템으로 기자가 들어가 한 끼를 추적했다. [편집자주]


[해남=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지난달 23일 아침 6시 찾은 전남 해남군에 있는 전복 유통업체 다복수산. 더 일찌감치 나온 오정목 대표는 사무실 불을 밝힌 채 새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지난 6월 쿠팡 로켓프레시 업체로 선정된 이래 매일 이렇게 출근한다. 밤새 접수한 주문 건수를 확인하던 그가 기자를 불렀다.

“지금 올라오는 송장이 맞죠?”

기자가 전날 밤 10시에 넣은 쿠팡 프레시 주문건의 송장(送狀)이 사무실 프린터에서 출력돼 올라오고 있었다. 기존 물류 공식을 깨는 광경이라 파격적이었다. 통상 물류는 `산지→집하(물류센터)→분류→배송` 단계를 거치는 게 일반 흐름이다. 송장은 분류 단계에서 부착된다. 승차권과 같아서, 없으면 물건이 움직일 수 없다. 물건을 배송하려면 집하와 분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게 다 시간과 돈이라 비용이다.

▲기자가 전날 주문한 쿠팡 로켓 프레시 상품의 송장을 산지(다복수산 사무실)에서 출력해 들어보이고 있다.
다복수산은 이 단계를 `산지→배송`으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존 단계를 거쳤다면 활(活) 전복은 신선도가 떨어져 상품화하는 게 어림도 없었다. 쿠팡 모바일프레시(MF·Mobile Fresh) 시스템 덕분이다. 산지에서 배송 물품의 위치를 단계별로 추적하는 게 핵심이다. 전국 개별 산지를 모두 물류센터화(化)한 것이니 미니풀필먼트(Mini Fulfillment)로도 일컫는다. 말이 쉽지 쿠팡이 국내에서 유일하다시피 도입하고 있다.

모바일프레시 덕에 주문 213건의 송장을 아침 7시가 될 무렵 모두 출력했다. 이제부터는 전복 포장 라인이 분주할 차례다. 크기와 마릿수 별로 접수된 주문은 오후 1시 배송 차량 도착 전까지 포장을 마쳐야 한다. 세척, 분류, 포장, 검수, 배송 단계별로 선 직원들이 한시도 손을 놀릴 새 없다.

▲왼쪽부터 다복수산 김일용 이사, 오정목 대표, 정칠승 과장이 포장을 앞둔 전복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복이 보관통에 붙어 있는 것은 흡입력이 세다는 의미고, 전복은 흡입력이 셀수록 선도가 좋은 편이다.
전남 해남과 진도, 완도 지역 120여 어가로부터 수확해 수조에 보관해둔 전복이 작업대에 올랐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남해 청정 해역에서 길러 수일 전에 들여왔다. 전복은 하나같이 흡착 빨판에 힘을 잔뜩 주고 보관 통에 붙어 있었다. 일부는 서로 엉켜 체온을 나누며 추위를 견뎠다. 전복 빨판 흡입력은 신선도를 가르는 절대 기준이다. 시장이나 식당에서도 바닥에서 홀로 뒹굴거나 뒤집힌 전복은 되도록 피하는 게 요령인데 여기서는 이런 게 눈 씻고 찾아도 없다.

특히 이맘때 전복은 봄철 산란기를 앞두고 살을 찌우는 시기라서 맛이 제일이다. 시장에서는 전복 성수기를 여름(보양)부터 가을(추석)로 치는데, 이는 수요가 늘어서 성수기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제맛이 오르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12월부터 봄철 산란 직전까지가 진짜다.



진짜배기 전복 가운데서도 쿠팡 로켓프레시로 팔리는 건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오 대표는 “쿠팡 상품은 끊김 없이 공급하는 게 핵심인데 산지에서 전복 수급은 항상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며 “도매용 출하량을 줄이더라도 쿠팡 전용 물량은 늘 넉넉히 확보해둔다”고 했다.

▲다복수산 직원이 전복 포장재에 산소를 주입하고 있다. 산소 포화도가 늘어나면 전복이 숨쉬기가 편해 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포장 단계에서도 특별 대접은 이어졌다. 길어온 해수를 알맞게 데우고 포장 직전에 산소를 투입했다. 전복이 활성도를 잃지 않고 편히 숨을 쉬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이로써 여정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배려 차원이다. 기자가 직접 주문한 전복도 이런 과정을 거쳐 담기는 걸 보노라니 안쓰러움을 다소 지울 수 있었다.

해수와 산소 마사지를 받은 전복은 스티로폼 포장을 거쳐 이름표(송장)를 달았다. 다복수산 김일용 이사가 모바일프레시 전용 기기로 바코드를 찍는 순간, 기자의 쿠팡 앱에서 배송 상태가 `집하`로 완료됐다. 오전 8시32분이었다. 주문을 넣은 지 10시간30여분 만이고 송장을 출력한 지 2시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기자가 집으로 배송될 전복 상품을 산지에서 들어보이고 있다.
당일 배송은 전날 오후 1시부터 당일 오후 1시까지 접수한 주문을 대상으로 한다. 이날 주문량은 오전 6시 기준 213건에서 오후 1시 배송 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350건으로 늘어나 있었다. 김 이사는 “12시59분까지 접수한 주문은 당일 배송한다”고 했다.

다복수산이 당일 배송 상품을 배송차량에 모두 실은 시점은 오후 1시20분 무렵이다. 기자의 쿠팡 앱에서 배송 상태가 `센터상차` 단계로 바뀌었다. 이 차량에 담긴 기자의 전복은 경기 화성 동탄허브로 이동해, 다시 지역별 캠프(경기 부천)를 거쳐, 기자가 거주하는 서울 양천구로 배송될 운명이다.

전복과 안녕하고 상경하고자 차량에 시동을 거는 기자를 배웅하는 김 이사가 말했다. “전복이 동탄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기자님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걸요.” 전복을 지체없이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말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현실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후 2시께 해남에서 출발한 기자는 교통 체증과 운전 미숙을 뚫고 오후 9시가 다 돼 집에 도착했다. 전복 위치를 확인하고자 쿠팡 앱을 켜보니 8시13분에 동탄에 도착해 이미 다음 행선지를 향해 이동 중이었다. 발 없는 전복에 뒤질세라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허사였다. 배송 기사의 노력이 아니라 모바일프레시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24일 오전 6시7분 확인한 쿠팡 로켓프레시 상품. 실제로 도착한 시각은 차에 실린 지 15시간이 안된 새벽 4시께다.
이튿날 아침 6시7분.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흰 스티로폼 박스가 기자를 맞았다. 쿠팡 앱은 이 박스가 새벽 4시6분 배송 완료됐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해남에서 차에 실린 지 15시간이 채 안 돼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박스 뚜껑을 열어보니 전복은 포장지 벽면에 붙어 숨을 쉬고 있었다. 산지에서 봤던 짱짱한 흡착력을 잃지 않은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