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삼성전자가 안 가면 코스피가 망한다?
by고준혁 기자
2021.05.06 05:30:00
2010년 기준, 前 삼전이 코스피 후행, 後 삼전이 코스피 선행
이번 랠리 '후행' 거론…"외국인 이미 많이 사, 다른 기업 살 가능성"
'박스피' 3분기까지 시각도…"원자재 상승 판매 가격 전가? 모른다"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유명합니다. 토론의 단골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이 주제는 언제나 갑론을박이 치열합니다. 파산으로 인한 타격의 정도가 망할 정도냐 아니냐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시뮬레이션이 다르기 때문일듯합니다. 주식시장 관점에서만 보면 좀 쉽게 결론이 날까요?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절대적인 비중(4월 말 우선주 포함 24.7%)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오르지 않고서 코스피가 오르는 일이 가능할까요?
| 2003~2007년, 삼성전자와 코스피가 동행하는 가운데, 후반부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후행한 모습. (출처=한국거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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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2000년대 이후 추세적 상승을 했다고 보는 구간은 총 3곳입니다. 2003년 4월~2007년 10월의 ‘차이나 플레이’, 2009년 3월~2011년 4월의 ‘차화정 랠리’, 2017년 1월~2018년 1월의 ‘반도체 랠리’입니다.
주가는 기업 이익의 함수이므로, 이 둘은 같이 움직입니다. 다만 주가는 선행성이 있어 좀 먼저 나갑니다. 경기불황에서 기업 실적이 바닥을 치면 주가가 먼저 움직이고, 기업 실적이 개선될 땐 또 따라서 주가는 상승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자산시장의 호황이 실물 경기로 넘어올 때 주가는 2차로 크게 뜁니다. 그리고 나서 이익이 최정점에 도달하는 기미가 보이면 주가는 먼저 꺾이는 것으로 상승 주기는 종료됩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2000년대 이후 코스피 장기 상승 구간에서 삼성전자와 코스피는 운명을 같이했습니다. 둘은 같이 오르고 같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구간을 특정 시기로 한정할 땐 변화가 감지됩니다. 기업 이익이 쭉쭉 오르는 구간, 2차 주가 상승 때만 놓고 보면 2010년도 전후의 삼성전자와 코스피 주가 추이는 성격이 다릅니다.
2010년까진 코스피가 먼저 치고 나가면 삼성전자가 뒤따라 오릅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상승장에선 이러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주가 연동성이 더 견고해지는 가운데, 간혹 삼성전자가 먼저 오르고 코스피가 후행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이는 삼성전자 위상이 커지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융위기를 기준점으로 잡고, 그 이전과 이후 기업 이익 사이클 후반부에서 나타나는 삼성전자와 코스피의 주가 추이는 좀 다르다”며 “이전엔 코스피 고점 뒤에 삼성전자 고점이 나왔는데, 이는 국내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지금보다 별로 없었을 당시 그나마 삼성전자가 괜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그렇지 않고 삼성전자가 조금 선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코스피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이익 비중이 굉장히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위상이 커질수록 ‘삼성전자가 곧 코스피다’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고, 때때로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끌고 갈 때가 있단 것입니다.
| 2017~2018년. 삼성전자와 코스피가 동행하는 가운데, 후반부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선행한 모습. (출처=한국거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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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13년(2007년 7월~2021년 1월) 만에 코스피가 2000대에서 3000대로 넘어온 현 구간을 추세적 상승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4번째 장기 상승장인 셈입니다. 이익 사이클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공장 가동이 멈춰버린 뒤, 같은해 말 백신이 개발되면서 세계 경기는 차츰 살아나고 있습니다. 칼로 무 베듯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현재는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좁혀지는 단계로 경기 회복 초반부를 지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더 좁혀 들어가면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상승하는 반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소폭 상승 또는 횡보하는 구간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상승하며 상품 수요는 최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반면, 그간 설비투자를 줄였던 기업들은 판매할 제품이 모자랍니다. 이 과정에서 원자재가 빠르게 소비돼 원자재 가격이 오릅니다. PPI 지수가 상승하는 원리입니다.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느껴 소비자 판매 가격을 올릴 때서야 CPI도 상승하게 되는데, 아직은 여기까지 넘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회복됐다고 판단하면 CPI도 PPI 만큼 오를 것입니다.
| 코로나19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크게 상승한 데 비해 소지자물가지수(CPI) 상승 폭은 작은 모습. (출처=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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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집 주인은 밀가루 가격이 이렇게 오르는 것도 본 적이 없고, 양파를 구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적도 없는데, 짜장면 가격을 올리려고 보니 옆에 있는 대형 짜장면 집이 가격을 올리지 않아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짜장면 가격을 CPI에 비유해 현 구간을 설명합니다.
코스피 이익 추정치로 볼 땐 경기 회복 사이클의 완전한 초반은 아닙니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KOREA INDEX)의 전년 대비 올해 예상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1월 초만 해도 24.2%였습니다. 2월 초도 23.8%로 비슷했습니다. 그러던 게 지난 3월 51.1%로 껑충 뛰었고 그 뒤 서서히 높아져 현재는 64.1%로 올랐습니다. 올해 국내 기업들의 순이익 예상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 폭은 다소 둔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예상 EPS 추이는 이보다 못합니다. 1월 26.0%에서 3월 31.6%로 뛴 뒤에는 5월 37.8%로 전년 대비 올해 EPS 증가 추세가 국내 기업 평균보다 낮은 것입니다. 뒤집어 보면 삼성전자 말고 다른 기업들이 전체 지수 상향 조정에 기여한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 올해 주당순이익(EPS) 예상치 상향 조정이 MSCI 한국 지수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출처=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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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경기나 기업 이익 사이클은 후반부를 향해 갈 것입니다. 이번에도 덩치가 큰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이끄는 장면이 연출될까요? 덩치가 크지만 코스피에 이끌릴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그래프처럼 말입니다. 이미 징조는 포착됩니다. 연초 대비 코스피와 삼성전자의 주가는 크게 볼 때 둘 다 횡보하고 있지만, 지난 4일까지 수익률은 각각 9.5%, 1.9%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이는 코로나19라는 ‘독특한’ 불황으로 설명됩니다. 사람들을 집에 가둬두는 형태의 불황은 일명 컨택트(비접촉) 업종을 순식간에 망가뜨렸다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때 다시 크게 복구됩니다. 다른 때보다도 컨택트 경기 회복 탄력이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만 코로나19를 잘 극복하고 있는 점도 있습니다.
허재환 팀장은 “최근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선행하는 경향이 잡히고 있지만, 올해 및 이번 사이클은 후행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삼성전자도 좋겠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기업들의 이익도 좋기 때문”이라고 관측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삼성전자를 사는 자금은 액티브일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달러가 좀 약해도 신흥국들의 경우 코로나 문제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패시브라고 해서 외국인들이 비중대로 사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비중이 꽤 이미 높기에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을 사는 게 가능할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외 종목을 사면서 코스피가 상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IT산업 잉여현금흐름(FCF) 사이클이 이외 업종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기 때문으로도 설명도 있습니다. 지금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제조업의 FCF가 반등하고 있습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를 비울 용기’란 보고서에서 “포트폴리오에서 삼성전자를 올해 딱 한 번 비운다면 2분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삼성전자 주가는 1분기 실적발표 이후 코스피200을 언더퍼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시장 참가자들이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모멘텀이 다른 기업들보다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삼성전자는 다른 코스피200 기업들과 엇갈리는 잉여현금흐름(FCF)를 그리는데, 정보기술 산업은 가격(P)보다 수량(Q)이 매출에 중요하기 때문에 물가의 등락과 실적이 같지 않고, 2021년 이후 삼성전자의 FCF는 여타 코스피200 제조업체들과 엇갈려 왔다”고 했습니다.
| 2021년~. 삼성전자와 코스피가 동행하는 가운데, 4월 이후 코스피는 상승, 삼성전자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한국거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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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코스피 상승 사이클이 종료될 때까지 멀리 떨어져 볼 때 삼성전자가 끝까지 오르지 않을 확률은 ‘제로(0)’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하반기 메모리칩 부족 문제가 생산능력(CAPA)이 확대되며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Target Price) 평균치는 10만6000원으로 현재 주가(8만2600원)와 괴리율은 28.3%입니다.
목표주가 11만1000원을 제시한 김경민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삼성전자 컨퍼런스콜을 참고해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를 43조6000억원에서 46조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주가의 주당순이익(EPS)이나 주가수익배율(PER)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2분기 영업이익의 레벨 업과 오스틴 가동률 회복 흐름 고려 시 반도체 부문이 주도하는 투자 심리는 바닥을 통과하며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언제 삼성전자와 코스피가 오르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PPI 상승이 CPI로 넘어가려면 강한 수요 회복이 확인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불안하다는 관점입니다. 원자재값만 치솟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가 2분기에 끝나는 문제까지 있는 등 반도체는 물론 다른 기업들도 예상보다 회복 강도가 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지호 센터장은 “코스피가 가려면 삼성전자가 가야 된다는 건 명확하며 주도주 교체가 일어나는 건 어렵다고 본다”며 “2분기 지나 3분기까지 삼성전자 포함, 코스피가 지금의 3200 박스권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업들 이익이 좋아지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쇼티지(Shortage·공급 부족) 때문이고 기저가 끝나는 2분기에 피크 아웃(Peak Out)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라며 “(PPI에서 CPI로의) 가격 전가가 일어나려면 강한 수요가 확인돼야 하는데 지금은 모르는 상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수요가 회복이 안 되면서 원자재 가격만 오르는 코스트 푸시(비용 압력)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며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실적 서프라이즈를 냈음에도 주가 흐름이 나빴는데, 이 역시 금리가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배송비와 임금 등 코스트 부담이 늘어난 이유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