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작가'의 고민을 들추니…'얼굴'들이 보였다

by오현주 기자
2021.04.11 03:30:00

김동선·유향숙, 누크갤러리 '아이콘+' 전 열어
화가 남편, 조각가 아내인 부부작가의 2인전
대상과 교감이룬 선명한 회화 은근한 돌조각
다름 전제로 서로 묻어간 '얼굴' 작품 내보여

김동선의 ‘오마주 Ⅵ’(2021·캔버스에 아크릴, 76×77㎝·왼쪽)과 유향숙의 ‘얼굴’(2014·19×7×19㎝). 서울 종로구 평창동 누크갤러리서 연 2인전 ‘아이콘+’에 걸고 세웠다(사진=누크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패인 주름 사이를 파고든 깊은 눈매, 생각에 빠진 듯한 진중한 저 얼굴은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의 것이다. 렘브란트는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빛나던 시절만 좇은 것도 아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일생의 기록을 자신의 얼굴로 대신 남겼는데, 절정의 명성과 부를 누리던 젊은 시절부터 몰락한 채 고독하게 사그러져간 노년까지 100여점이다. 물론 저 렘브란트는 자화상이 아니다. 작가 김동선(66)이 다시 옮겨낸 렘브란드다.

#2. 돌이 웃고 있다. 파안대소도 아니고 헛헛한 웃음도 아니다. 보일 듯 말 듯 입가와 눈가만 살짝 움직인 수줍은 미소다. 돌이라고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긴 쪽이라고 해야 30㎝ 남짓한 하얀 대리석을 총총히 쪼아내, 마치 머릿결이 날리는 듯한 그 배경에 작은 얼굴이 보일 뿐. 어찌 보면 순박한 여인이, 어찌 보면 자애로운 부처가 또 성모마리아가 보인다. 각지고 모난 돌이 저렇게 부드러워지려면 얼마나 수없이 어루만졌을까. 작가 유향숙(65)의 손과 정이 말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누크갤러리에 걸고 세운 ‘얼굴’들은 작가 김동선과 유향숙이 연 2인전 ‘아이콘+’에 나온 거다. 두 작가는 부부다. 남편은 화가로, 아내는 조각가로 닮지 않았으나 닮을 수밖에 없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선과 색이 선명한 회화와 은근하고 무던한 조각이니 다름을 전제할 수밖에. 그럼에도 서울대 미대 시절 만나 지금껏, 이제는 문 하나 사이에 둔 작업실에서 시간과 생각을 함께한다니 서로 묻어갈 수밖에.

김동선 ‘오마주 Ⅳ’(2021). 캔버스에 아크릴, 97×100㎝(사진=누크갤러리).


김 작가가 그리는 얼굴의 시작은 ‘아이콘’ 설정부터란다. 배우가 됐든 화가가 됐든 대상을 정해두고 그들에 대해 붓으로 경의를 표현하는 건데. 특별한 건 그 대상에 다다르는, 단순묘사 이상의 교감에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이콘화한 대상과 기어이 합을 이뤄내고야 마는. ‘오마주’ 연작은 그렇게 나왔다. 특히 ‘오마주 Ⅵ’(Homage·2021)은 빛과 어둠의 대비로 드라마틱한 질감을 표현한, 삶의 회한을 미세한 주름에 남김없이 실어낸 렘브란트의 생애를 통째로 품은 완성체라고 할까.



유 작가가 빚은 얼굴의 시작은 ‘내 안에 들어오는 돌’ 구하기부터란다. 자신이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작은 돌을 찾아 그 성질을 거스르지 않는 조각을 한다. 형체를 만들기 위해 돌 본연의 물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시 교감이다. 생명체가 아닌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은, ‘한낱 돌덩어리’라 치부해버린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작 ‘얼굴’(2014·2019·2021)은 작가가 돌과 이어간 길고 긴 대화고 서로에 대한 감응이다.

유향숙 ‘얼굴’(2019). 대리석, 26×9×18㎝(사진=누크갤러리)


이번 전시가 남다른 것은 갤러리가 기획전에 얹은 의미 때문이다. 이른바 ‘중간작가 후원전’이다. 미술계에서 가장 후원이 많은 신진작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중견작가와 달리, 후원과 작업에 사각지대에 몰려 있는 작가군이 있다는 건데, 바로 ‘중간작가’란다.

조정란 누크갤러리 대표는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지만 관람객과 평단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중간작가에게 작업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사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2013년 갤러리가 개관한 이후 ‘중간작가 후원전’은 지속해왔던 거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한 전시는 올해 상반기 후반기에 걸쳐 두 차례 진행할 계획이란다.

남편이 붓으로 옮긴 얼굴들에 아내의 돌로 빚은 얼굴들이 화답하는, 잔잔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전시는 16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