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구자형 기자
2019.03.20 00:19:03
SNS에 수소수, 정수기 업체 광고 노출
"미세먼지 예방에 수소수가 효과적이다" 주장
쥐 실험에 그친 ''수의학'' 연구…전혀 사실 아냐
미세먼지가 한풀 꺾이고, 다가오는 봄철 황사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고밀도 공기청정기 등 준비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제품이 있다. 바로 미세먼지 배출과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수소수'다. 초미세먼지가 한반도 전체를 훑고 지나가면서 SNS에 "미세먼지 예방에 수소수가 효과적이다"라는 광고가 잇따라 게재됐다. 업체들은 수소수가 우리 몸에 축적된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심지어 예방까지 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수소수 업체들은 논문을 인용하며 수소수와 미세먼지에 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수소수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업계 광고는 사실일까? 이데일리 스냅타임에서 수소수 효과에 관한 팩트체크를 진행했다.
국내 ‘수소수 유행’…2008년부터 이어져
수소수가 인체에 이롭다는 주장은 최근 들어 나온 것이 아니다. 수소수는 2008년부터 ‘생명의 물’이라는 별칭으로 여러 인터넷 매체에 오르내렸다. 기왕 마시는 물인데 건강하게 섭취하자는 얘기였다. 이 물의 효능은 매우 다양했다.
인터넷 매체 퓨처에코에서 2011년 작성한 글에 따르면 수소수는 활성산소를 없애주고, 아토피에 효과적이며 구강위생까지 도와주는 만능 음료다. 또 수소수로 씻은 과일은 수명이 더 오래가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사람들의 모발 건강까지 도와준다고 한다. 이러한 효능 홍보에 웰빙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정수기, 캔 음료, 화장품 등 다양한 수소수 제품이 출시됐다.
그러나 수소수를 바라본 학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소수의 인체 효능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의문은 물에 녹을 수 있는 수소 양이다. 대기압에서 수소가 녹을 수 있는 최대량은 1.6mg으로 아주 적다. 따라서 수소수 10L 이상을 마셔야 0.01g 정도의 수소를 섭취할 수 있다.
체내로 진입한 수소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인간이 36.5도의 체온에서 흡수할 수 있는 수소는 나노그램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자들은 "산성을 띄고 있는 위를 거쳐 십이지장으로 전달되면 수소수를 마셔도 체내에 수소가 남아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강한 산성을 띄고 있는 위를 지나 중화 반응이 일어나는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면 수소가 남아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수소수 자체가 과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주 미량이 녹을 뿐이고 인체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 자체가 의미 없다"고 덧붙였다.
수소수 업계에서 홍보에 자주 인용하는 자료는 지난 2007년 학술지 Nature Medicine에 실린 오타 시게오 교수의 'Hydrogen acts as a therapeutic antioxidant by selectively reducing cytotoxic oxygen radicals'라는 논문이다. 오타 교수는 논문에서 쥐에게 수소를 주입해 뇌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수소가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여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는 수소가스를 이용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수소수의 효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계의 반론이 거센 가운데, 수소수 업체들의 무분별한 광고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식약처에서 실시한 의료기기 과장 광고 단속 중 수소수를 의학적 효능이 있는 의료기기처럼 광고한 일부 업체가 적발됐다. 당시 식품위생법 제13조에 따르면 일반 식품을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거나 의약품 또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하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일반 식품인 수소수를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부풀려 판매한 것은 엄연한 위법 행위였다. 현재 식품위생법 제13조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 별도 제정되면서 삭제됐다.
인체 효과는 수의학 논문에서?…‘효능 불명’
수소수가 미세먼지에 효과적이라고 선전하는 업체들은 2017년 충북대 수의과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을 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연구팀은 'Hydrogen-enriched water eliminates fine particles from the lungs and blood by enhancing phagocytic activity'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진폐증을 유발한 쥐에 10주간 수소수를 투여했더니 허파 속 미세먼지가 감소하고 염증이 완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혈액 내에 유입된 미세먼지 입자까지 수소수가 청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수소수 업계는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실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충북대 수의과대학 논문은 중국 난징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The Journal of Biomedical Research(JBR)'라는 학술지에 실렸다. 이 단체는 충북 청주에서 한국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웹사이트에서 안내하고 있는 한국 사무실 주소를 찾아가보니 충북대가 나왔다. 국내 담당자 이메일도 충북대 도메인인 'cbnu'로 되어 있었다.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이라는 표현은 옳다. 그러나 충북대 연구팀이 학술지 편집 담당자로 되어있어, 당연히 수록돼야 할 논문이 들어간 셈이다.
또한 지난해 4월 인터넷 매체 푸드아이콘의 홍보 기사에 따르면 충북대 수의과대학은 국내의 한 수소수 업체와 연구를 함께 진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는 연구에 사용된 수소수가 자사의 제품이라고 적극 홍보하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해 ‘미세먼지 방어 음료’로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논문이 수소수 업체들에게 '우리 가족의 미세먼지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광고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진 않는다. 해당 논문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진행된 '수의학' 자료이며, 확실한 인체 효능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가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소수의 효과를 당장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실험용 쥐뿐이다.
이덕환 교수는 이 같은 업계 광고를 '엉터리'라고 일축했다. 이 교수는 "실험용 쥐에게만 발견된 효과를 두고 인체에도 적용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비정상"이라며 강하게 꼬집었다. 진폐증을 다뤘던 논문에 대해서도 입장을 더했다. 이 교수는 "진폐증과 수소수가 허파에 작용하는 부분은 다르다"면서 “진폐증은 허파의 꽈리를 자극해 바깥에서 생긴 증상인데, 수소수가 어떻게 영향을 주겠나”라고 반문했다.
업체 ‘미세먼지 예방 효과’ 광고…전혀 사실 아님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수소수 열풍을 타고, 최근 SNS에서 수소수가 미세먼지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광고가 퍼지고 있다. 그러나 수소수는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2008년부터 계속 의학적 효능을 검증받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맹물'로 지적하기도 했다.
수소수 업계가 미세먼지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며 드는 충북대 수의과대학의 논문은 충북대가 관여하고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인간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스냅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쥐에게만 실험한 것을 인간까지 적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부 업체는 수소수와 미세먼지 예방에 대한 나름의 특허출원을 제시하며 광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허 제도는 기술을 보호해주는 것이지 의학적 효능을 증명하는 장치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적으로 검증한 결과, 이데일리 스냅타임은 '수소수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수소수 업체들의 광고를 ‘전혀 사실 아님’으로 판단했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