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통상외교]④"외풍없는 전담조직 구축…민간전문가 협업도

by김형욱 기자
2018.02.22 05:05:03

전문가들이 본 한미 통상갈등 대응법
"EU·日 비교해 대미 통상채널 부족해"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통상외교 강국이 되기 위해선 중·장기적 관점에서 통상만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 통상외교 조직체계로는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갈등을 풀어낼 전문가 확보가 어렵고 그때그때 위기상황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한·미 통상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민간 전문가와의 유기적 협업도 제시됐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 교수는 21일 “우리도 (미국과의) 통상채널(핫라인)이 없진 않지만 유럽연합(EU)이나 일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U나 일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보를 이유로 철강 등 수입을 규제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로비해 이번 미 상무부 권고안에서 직접 타깃이 되는 걸 피했는데 우리는 같은 조건에서 최대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12개국에 포함된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EU는 미국에 군사 동맹 성격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만큼 유럽산 철강 수출이 안보 장애 요인이 아니라고 어필하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움직여 12개국에 포함되는 걸 피했다. 일본이 빠진 것 역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미·일 친선협회 회장을 지낸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교수는 “우리도 미국에 가서 아웃리치(외부 접촉)를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통상 채널을 확보할 외교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담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통상전담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관계자는 “정부 조직 특성상 직접 통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정부 내 전문가도 로테이션(순환) 배치돼 그때까지 쌓아 온 지식과 역량, 인적 네트워크가 사라지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 내에서도 좀 더 체계적인 통상 전담 조직을 만들어 연구하고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내 통상교섭본부 직원은 빠르게는 1~2년 단위로 산업-통상-자원 파트를 순환한다. 어떤 전문가도 일정 기간 이상 통상만 담당할 수 없는 구조다.



통상조직 자체의 소속이나 위상 역시 정권 교체에 따라 계속 흔들려 왔다. 통상기능 부처는 1970년 8월 상공부 통상진흥국으로 출범해 적잖은 성과를 냈지만 1990년 이후 정권 교체 때마다 조직체계 개편 논의의 대상이 돼 왔다. 1993년 3월엔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통합한 상공지원부로 출범했으나 이듬해인 1994년 다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1998년엔 외교부로 이관됐다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소속으로 재출범했다.

통상 조직은 지금도 우리 내부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 배찬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본부 무역투자정책팀장은 “일각에서 한미 통상 갈등을 동맹 관계랑 엮어 문제 삼기도 하는데 통상 갈등을 동맹 관계로 연계하는 순간 우리(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며 “정치권·언론도 국익 차원에서 경제 문제는 경제만의 관점에서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장 조직의 틀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민간 전문가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최원기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국제 규범에도 맞지 않는 황당한 얘기를 한다며 안일하게 대처할 시점은 지났다”며 “민간 합동회의 같은 형식적인 만남을 뛰어넘어 민간 전문가가 통상 조직에 한시 활동하는 등의 유기적 협조를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