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금융사 CIO가 '포드차' 주식 싹쓸이한 까닭

by오현주 기자
2017.08.23 00:12:01

이성·논리를 인간성 최고덕목 여겨
감정은 즉흥·부정적으로 공론 안돼
인간행동 대부분은 감정서 비롯돼
'감정동물'임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최고 가치 '타인과 소통·대화' 얻어
…………
감정 동물
강준만|384쪽|인물과사상사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비난이 쏟아진 자초지종은 이렇다. 미국의 한 대형금융회사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어느 날 자동차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당연히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어느 자동차? 테슬라? BMW?” 그런데 알고 보니 포드자동차다. 아, 도대체 언제 적 포드란 말인가. 미국 자동차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던 승승장구도 이미 100년 전 일이다. 이후 제너럴모터스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다음은 크라이슬러. 지금은 순위 매기기도 참 난감한 지경.

포드차야 그렇다 치고. 이 최고투자책임자라는 사람은 뭔가. 왜 하필 포드지?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모터쇼에 갔다가 강한 ‘필’을 받았단다. 그래서 포드차 주식에 대한 평가·분석을 했다? 아니다. 전혀 없었다. 자동차가 좋았고, 포드가 좋았고, 포드 주식을 보유한다는 생각이 좋았고. 그래서 그냥 샀단다. 이거 소문나도 괜찮은가. 일반투자자도 아닌 대형금융회사의 최고간부인 그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해도 되는 건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분석이 바로 따라왔다. ‘감정 휴리스틱’ 때문이라고. 감정이 개입하면 논거보다 결론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거다. 쉽게 말해 감정에 푹 빠지면 그외 나머지는 별 문제도 아닌 게 돼버리는 걸 말한다. 그런데 이 행태가 과연 포드차의 대주주가 된 이 최고투자책임자에게만 보이는 특성인가.

역사를 따지면 꽤 길고 복잡하다. 언제부턴가 인간성의 권장 덕목이 ‘이성’이 된 건. 거기에 덧붙여 ‘인간은 늘 냉철한 논리와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물’이 돼왔다. 아니면 그런 동물이 돼야만 했고. 그러니 가장 신경쓰이는 욕은 “너 왜 그리 감정적으로 행동하느냐”다. 그 질책을 피하려 좋아서 혹은 성질이 나서 한 행위조차 감정과는 무관했던 것으로 포장하려 들었던 거다. 이성의 반대꼭지를 차지한 감정은 감히 공론에 올릴 수 없을 만큼 허술하고 부정적이며 즉흥적이고 질퍽거리는 이상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단다. 커뮤니케이션학·한국학·인물 연구를 전방위적으로 해온 저자가 ‘전문영역을 치밀하게 살린’ 엄청난 필력을 다시 동원해 제동을 걸었다. “감정에 이런 대접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감정을 향한 소홀한 취급이 왜 부당한지를 조목조목 짚어낸 것이다. 이론적 근거만 40가지. 소통을 평생작업으로 여긴다는 저자로선 ‘인간은 감정동물’이란 명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단다. 누가 됐든 내 사고·행동이 감정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게 인간관계의 소통을 위해 절대적이라고.

△“왜 그리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감정이란 건 한마디로 ‘행동하려는 충동’이다. 또는 ‘행동하려는 경향성’을 내재한 상태. 그런데 세세히 들여다보면 감정이 벌이는 일은 대단히 광범위하다. 충동이나 경향성 그 이상인 거다.

저자가 짚은 첫 케이스부터 볼까. 도덕적 자신감이나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사람은 부도덕해지기 쉽단다. ‘도덕적 면허효과’라는 거다. 면허를 취득했으니 행동은 따라나오기 마련. 그런데 감정적으론 희한하게 반대급부가 생긴다는 거다. 그간의 선한 도덕성 이미지로 면허를 만들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해도 괜찮겠지 여기는 경향 말이다.



‘펠츠먼 효과’라는 것도 있다.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다고 여기면 그만큼 위험을 더 즐긴다는 건데. ‘볼보 운전자는 운전실력이 형편없다’는 속설도 거기서 나왔다. 차가 안전할수록 부주의하게 운전한다는 뜻이 들었다. 리스크 분산의 역할을 맡은 보험·금융 등에서 보이는 ‘구성의 오류’라는 것도 있다. 타당한 행동을 모두 다 같이 할 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가령 주택저당증권·파생상품 같은 금융혁신이 되레 위험에 선뜻 다가서게 한다는 거다. 그러니 시스템의 위험총합은 증가할 수밖에.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도덕적 해이’라는 게 그거다.

△사람을 이해하는 건 이성 아닌 감정

직원 A씨는 매장에 손님이 보이기만 하면 ‘밀착’한다. 친절한 행동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근접공간학’은 A씨의 행동이 과유불급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 손님을 쫓을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손님 중 37%는 판매원과 눈만 마주쳐도 그냥 나가버리더란 통계도 있다. 굳이 이것이 아니더라도 친밀감을 보이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는 건 상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이 범하는 평범한 오류 중 하나가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안다’는 거다. 자기평가를 할 때 스스로의 관찰에 의한 통찰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 잡는 건데. ‘내성 착각’이다.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패고 ‘내가 옳았다’고 밀어붙이는 행태가 이 안에 묶일 수 있겠다. 20년 전 일이긴 하지만 여기에 걸맞은 조사 하나만 보고 가자. 대상자에게 ‘누가 천국에 갈 확률이 가장 높을까’라고 물었다. 빌 클린턴 52%, 다이애나 왕세자비 60%, 오프라 윈프리 66%, 마더 테레사 79%. 그런데 1위는 따로 있었다. ‘나 자신’이다. 87%라고.

△회사 정수기 앞 잡담이 쓸 만한 까닭

‘정수기 효과’라고 들어봤나. 정식으론 ‘워터쿨러 효과’라고 부르는 것. 소문이 흘러나오는 데서 비롯된 어떤 영향력을 말한다. 사무실에선 탕비실, 커피자판기, 흡연공간 등. 예전이라면 우물가·빨래터도 한몫 했겠지. ‘소문’이란 단어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되레 ‘의사소통의 활성화’란 관점에선 긍정적이란다. 미국에선 ‘워터쿨러 효과’를 내기 위한 공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니. 좀더 확장하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려면 정수기 앞에서 기다려라는 공식이 생길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아온 건 결국 소통을 위해서였다. 저자는 ‘나는 감정동물’이란 걸 순순히 인정할 때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대화라는 소중한 가치를 얻게 된다고 단언한다. 어떻게? 결국 겸손해지는 거니까. 기대만큼 내가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 성찰이니까. 살면서 한 번쯤 이렇게 장담한 적이 있는가. “감정은 일체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책은 그 자체가 참 딱한 일이었다는 것을 수시로 일깨운다. 감정에 휘둘려 문제를 만들고 그 해결을 엉뚱하게도 감정 밖에서 찾으려 한 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