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27회:지피지기의 피(彼)
by이민주 기자
2017.07.10 06:00:00
상대인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 전통은 말할 것도 그들이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특히 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전혀 몰랐다. 그들에게 돈은 생명이었다. 대놓고 말만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일이 돈하고 연결되어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니 ‘맹자와 공자왈’ 소리치는 그들의 머리 속에는 돈이 가득 차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6년여 간 그들과 생활해온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중국인과 돈 이야기를 해보자.
장면 1. 자동차 여행 중 길을 잃었다. 내 승용차 한족 기사도 길을 찾을 수가 없어 쩔쩔 맸다. 그 때 저 멀리서 손짓하는 남자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목에 큼직한 글자를 매고 있다. 흰 헝겁에 쓰여진 두글자가 보인다.
‘尋道’(심도)
길을 찾아준다? 한족 기사가 차에서 내려 그 사람과 무엇인가 열심히 얘기하다 훽 돌아오더니 차를 몰았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고 어떤 대화를 나눴냐”고 물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찾아주는 사람. 고객의 차에 같이 타고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안내해준다. 그리고 찾아간 곳의 거리에 따라 ‘안내비’를 받는단다.
장면 2. 북한의 의주가 보이는 단동에 가면 미군의 폭격으로 끊긴 철도가 있다. 끊어지기 전엔 ‘압록강 철교’, 끊어진 후엔 ‘압록강 단교’!
한국 사람이라면 신의주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니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도대체 왜 이런 불행이 우리에게 닥친 것인가? 이곳에 갈 때마다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지는 현장이다. 밤에 가보면 알게된다. 내가 서있는 단동은 네온사인에 LED 불빛으로 휘황찬란하다. 불야성이다. 그런데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전혀 불빛을 찾아 볼 수 없다. 전력이 부족하다고는 해도 너무하다.
압록강 단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웅성웅성한다. 철교가 끊어진 곳까지 다니는 말이 있다. 이왕 왔으니 말을 타고 가보기고 했다. 요금을 내니 안내하는 한족이 말고삐를 잡고 끊어진 곳까지 갔다. 신의주를 바라본 후 돌아가려니 안내인이 말에서 내리라고 한다. 일단 말에서 내려 “왜그러냐?”고 묻자 그 안내인은 말 타기 전에 낸 요금은 여기까지 오는 비용이니 여기서 돌아가려면 요금을 또 내야한다는 것이다. 짧은 한어로 아무리 따져 보려했지만 허사였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돌아 왔다. 화가 났지만 쏟아진 물 아닌가. 손 받기 전에 말하거나 안내판을 걸어 놓지 않는 그 한족 잘못인가? 미리 정확히 물어보지 못한 내가 잘못인가?
장면 3. 이번엔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 코앞까지 가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는 곳에 가니 길가에 한족 여인 2~3명이 검은색 비닐 봉지를 들고 서있다. 손짓으로 비닐 봉지 속을 보라고 한다. 이상해서 다가가 보니 검정 비닐 봉지 안에 1달러 한 장, 중국 담배 2갑, 과자 한봉지, 라면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제법 묵직했다. 통역에게 사정을 물어보게 했다. 기가 콱 막혔다.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 쪽에 가면 빨래를 하는 북한 여인네들을 볼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너무 너무 불쌍하다. 유람선이 강변 가까이 가면 그 사람들에게 문제의 검정 비닐 봉지를 던져주면 된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들에게 너무나 좋은 선물이 된다. 그러니 이 검정 비닐 봉지를 사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적선을 베풀어라. 액수는 비닐 봉지 안에 있는 달러와 담배 등 내용물 구입액의 두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쩔 수 없다. 가보자.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잖은가?
유람선에 한국인 10여 명이 탔다. 살펴보니 4명의 손에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이성계장군이 회군했던 위화도를 둘러보고 신의주 강변으로 가까이 갔다. 빨래하는 아낙네 3명이 보였다. 유람선이 강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멈췄다. 한족 선장이 비닐봉지를 빨리 던지라고 한다. 4명이 한국인이 재빨리 던졌다. 봉지 한 개는 물에 빠졌고 3개는 아낙네들 옆에 떨어졌다. 3명의 아낙네는 기다렸다는 듯이 빨래 속에 검정 비닐봉지를 숨기더니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단동으로 돌아와 벌건 대낮이지만 독한 중국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