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 반란…'아랍'에 푹 빠지다
by오현주 기자
2017.05.15 00:14:01
국립현대미술관서 이집트 현대미술 166점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전
국립중앙박물관선 아라비아 유물 466점
'아라비아의 길: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 전
국보급 문화재 대거 들여 낯선 예술 보여
내한해 홍보 나선 공주·왕자도 눈길 끌어
| 국립중앙박물관 ‘아라비아의 길’ 전에 나온 ‘남성상’. 기원전 3000∼4000년경에 사암의 붉은 기운을 씌워 거대하게 조각한 우람한 작품이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킹사우드대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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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서울 시내 한복판인 덕수궁에 청록색 얼굴의 인간이 떴다. 시내서 약간 비켜 있는 용산에는 사막의 모래바람깨나 맞았을 거대한 석상이 내려섰다. 아랍의 국가들에서나 볼 법한 낯선 얼굴, 낯선 분위기가 감도는 그곳은 각각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버티고 있는 장소가 아닌가.
| 케말 유시프의 ‘귀족’(1940년대). 이집트인은 청록·초록색을 나라를 지탱한 ‘신(神)의 색’으로 믿는다고 한다(사진=샤르자미술재단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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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이 ‘아랍’에 푹 빠졌다. 반란이고 파격이다. 국내 대표 두 미술관·박물관이 아랍국가를 조명하는 전시를 동시에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오는 7월 30일까지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을 펼친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8월 27일까지 ‘아라비아의 길: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내보인다.
이집트의 특정 시기 회화·조각을 메인 전시물로 내놓은 국립현대미술관, 기원전 8000년부터 근대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문명·유물을 소환한 국립중앙박물관.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두 기관은 기존 ‘한국적 정체성’에 굳이 감춰 뒀던 숨은 장기를 꺼내 든 듯하다. 그간 한국에선 보기 어려웠던 두 나라의 국보급 작품·유물을 수백여점 들여오며 국립만이 ‘휘두를 수 있는’ 파워를 온전히 드러냈다. 해외 나들이가 처음인 작품·유물도 수두룩하다.
‘그래 봤자 남의 나라의 고루한 문화재’라는 편견은 접어두는 게 좋다. 벽에 붙이고 바닥에 고정한 예술성이 이처럼 다이내믹한 운동성까지 겸비하긴 쉽지 않다. ‘국립기관에서 나서야 할 전시의 성격이냐’는 꼬투리도 잠시 감춰둘 일이다. 한번 뒤집어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우물 밖 세상에 청록색 인간, 6000년을 버텨온 석상도 있다는 걸 알리는 건 국립의 역할이다.
▲덕수궁 찾은 청록색 이집트인
이집트 하면 자동연상되는 미라나 파라오, 피라미드 이런 건 없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전은 1938년부터 1965년까지 이집트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주제 아래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작가 31명의 회화·조각·사진·드로잉 등 166점으로 구성했다.
| 압둘하디 알자제르의 ‘시민합창단’(1951)(사진=국립현대미술관. 카이로이집트근대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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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은 이집트에서 형성한 미술운동조직인 ‘예술과 자유 그룹’이 활동을 시작한 시기란다. 1965년은 이들에 이어 1946년부터 활동한 ‘현대미술그룹’이 공식적으로 종료한 시점이고. 특징은 1차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졌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유학파가 다수 속해 있다는 점. 다만 파시즘에 반발하며 자유를 갈구하던 프랑스와는 달리 이집트의 초현실주의는 근대기의 국가적 현실을 적극 반영했다. 영국 식민통치가 만든 차별과 억압을 비롯해 그렇게 고착된 빈부격차에 짓눌린 민중정서가 안팎에 배어 있는 거다. 가령 프랑스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분위기를 내더라도 개인적 고뇌보다 사회적 고뇌를 전면에 깔아두는 식.
| 푸아드 카밀 ‘꿈’(1941)(사진=국립현대미술관. 나딤 엘리아스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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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스 유난의 ‘자연은 여백을 사랑한다’(1944), 푸이드 카밀의 ‘꿈’(1941), 알둡하디 알자제르의 ‘시민합창단’(1951), 무함마드 리야드 사이드의 ‘20세기 문명’(1970년대), 사미르 라피의 ‘무제’(1975)와 ‘수태고지 2’(1977) 등의 회화가 눈길을 끈다. 온전히 한 세션을 할애해 꾸민 사진작가 반 레오의 기괴한 연출효과 작품이 발걸음을 잡기도 한다.
전시의 간판얼굴인 청록색 인간은 케말 유시프의 ‘귀족’(1940년대)이란 작품. 이집트에서 청록색 피부의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를 뜻한단다. 유독 초록·청록계열이 많은 건 이들 색이 나라를 지탱해준 ‘신(神)의 색’이란 믿음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몽환·상징을 덧발랐지만 현실적인 주제의식을 부각하는 과감하고 거침없는 색·터치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메카 카바신전 ‘문’ 용산서 열리다
누가 봐도 현대 추상조각으로 보인다. 1m 길쭉한 직사각형 몸통에 눈코를 붙여 둥근 띠로 윤곽만 잡은 얼굴, 몸을 휘감은 선뿐인 팔뚝까지. 이름도 없는 이 사람모양의 석상은 기원전 4000년대의 작품이다. 이슬람 순례길의 정점인 메카 카바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었던 문도 보인다. 1635~36년 오스만제국시대 만들어져 1947년까지 사용한 것이란다. 현재 카바신전에 붙은 문 바로 이전의 것이다.
| 기원전 4000년대에 만들어진 ‘사람모양의 석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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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는 기원전 8000년대부터 가까이는 19세기까지 ‘아라비아의 길’을 낸 전시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대부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3개 주요 박물관이 소장한 466점이 한반도에 대거 상륙한 셈.
전시가 강조한 건 ‘석유부국’이란 타이틀에 갇혀 있던 아라비아의 역사·문화를 제대로 봐달라는 것. 아닌 게 아니라 그 옛날 아라비아는 인류가 동·서양으로 퍼져 나간 통로였다. 결정적으로는 기원전 1000년경 유향과 몰약의 교역길을 업고 탄생한 고대 도시문화가 있다. 이후 6세기부터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떠난 순례길. 그 영향력은 왼쪽으로는 스페인, 오른쪽으로는 중국에까지 닿았다.
그 길을 따르듯 전시는 기원전 8801년쯤 만들어진 말상부터 기원전 3000∼4000년경 사암의 붉은 기운을 씌워 거대하게 조각한 우람한 남성상, 기원전 3000년∼기원후 300년쯤으로 추정하는 유려한 청동 손조각품,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국왕으로 등극한 압둘아지즈왕의 유품, 수려한 장식이 붙은 19세기의 장·단검, 총알거푸집 등 공예·민속품까지 망라한다.
역사연대기로 편성한 전시는 상상 이상으로 잘 보존된 유물의 상태에 놀라고 상식을 깨는 디자인과 미적 감각에 다시 한번 놀라게 한다. 이에 대한 막강한 자긍심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라비아는 사람이 사는 제일 남쪽의 나라다. 유황, 몰약, 계피는 오로지 이 나라에서만 난다.”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의 이 문구를 비롯해 세상의 끝이자 시작이라고 믿었던 고대인의 단상이 넓은 전시장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 이슬람 순례길의 정점인 메카 카바신전으로 들어가는 문. 1635~36년 오스만제국시대 만들어져 1947년까지 사용했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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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왕자 홍보 열 올려
두 전시를 위해 각국의 ‘국가대표 홍보단’이 총출동한 점도 이색적인 풍경이다. 이집트전을 위해선 아랍에미리트 토후국인 샤르자 국왕의 딸이, 아라비아전을 위해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왕자가 나섰다.
샤르자미술재단·이집트문화부·카이로아메리칸대 등이 공동기획한 이집트전에선 단연 후르 알 카시미(37)공주가 눈에 띈다. 샤르자미술재단의 카시미공주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인물. 세계미술시장에선 중요한 ‘큰 손’으로 꼽힌다. 2003년부터 재단을 이끌며 샤르자비엔날레를 중동의 대표적 미술축제로 키워낸 실력자이기도 하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카시미공주는 “이집트 초현실주의 미술은 시대변화를 적극 반영하는 예술운동”이었다며 “서구 열강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식민지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국왕의 장남인 술탄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왕자는 사우디관광국가유산위원회의 위원장 자격으로 내한해 전시홍보에 나섰다. 압둘아지즈왕자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만 잔뜩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며 “오래된 조각품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현대미술에까지 남아 있는 기예와 미적 감각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 ‘이집트 초현실주의자’ 전에 나온 사미르 라피 ‘수태고지 2’(1977)(사진=국립현대미술관. 나딤 엘리아스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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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초현실주의자’ 전에 나온 람시스 유난 ‘자연은 여백을 사랑한다’(1944)(사진=국립현대미술관. 카이로이집트근대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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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비아의 길’ 전에 나온 ‘말상’. 기원전 8801년쯤 만들어졌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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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비아의 길’ 전에 나온 기원전 3000년∼기원후 300년쯤으로 추정하는 유려한 청동 손조각품(사진=오현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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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비아의 길’ 전에 나온 단검(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약통, 의례용 단검, 총알거푸집, 도가니. 수려한 장식이 붙은 19세기의 민속품이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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