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지속 가능한 도시 만들기 고민에…"공유사회' 해법 제시해줘
by이승현 기자
2016.03.23 05:30:00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서울시 주택·도시 정책 집행 기관인 SH공사를 이끌고 있는 변창흠 사장이 업무상 서울시 청사에 들렀을 때 짬이 나면 항상 가는 곳이 있다. 바로 광화문 교보문고다. 서점 앞에 진열된 베스트셀러를 쭉 훑어보고 걸음을 옮기는 곳은 사회과학 서적 코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집어든다. 특히 빠지지 않고 보는 책은 도시와 관련된 것들이다. 신간이 많이 나오는 분야는 아니지만 매번 새로 나온 책이 있는지 눈도장을 찍는다.
이렇게 산 책들은 그의 가방에 들어가고 이동 시간이나 잠시라도 짬이 날 때마다 펼쳐진다. 예전에 교수 시절 때는 읽고 싶은 책을 편하게 읽었는데 SH공사 사장이 된 후로는 업무에 치여 책 읽기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나마 일요일마다 찾는 교수연구실에서 그간 쌓인 독서에 대한 갈증을 풀곤 한다.
변 사장이 책과 가까이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대표로 전국 고전 읽기 대회에 나가면서부터다. 고전 서너권을 읽고 책 내용으로 시험을 보는 대회였는데, 그는 도 대표로 선발돼 전국대회까지 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책읽기의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다독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꾸준한 책읽기를 통해 업무적 영감을 얻곤 한다.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변창흠 SH공사 사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명저로 꼽은 레제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공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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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집무실에서 만난 변 사장은 책 얘기가 나오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리고 그동안 고민해온 문제들을 쏟아냈다.
도시 재생 계획 전문가인 그가 최근 몇년 동안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도시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인지, 유지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와 과학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발전이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고 있다”며 “발전의 과실을 1% 사람이 대부분 가져가는 양극화 문제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세 가지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세 측면 모두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며 “현대 문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에게 해법을 제시해 준 책이 바로 ‘한계비용 제로 사회’(제레미 리프킨, 민음사)다. 미래서인 이 책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면서 자본주의 시대의 몰락과 그 후에 도래할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저자는 정보통신기술(ICT), 특히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달하면 소유권과 배타적 독점권이 무의미해지면서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는 시대가 오게 되고, 결국 자본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변 사장은 “정보의 홍수 속에 정보에 가격을 매길 수 있나. 정보에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면 가격을 매길 수 없게 되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자본주의 몰락 이후에는 협력적 공유 사회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쁜 자본주의가 선한 공유 사회로 대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변 사장이 주목한 점은 바로 이 책에서 얘기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는 “지난 2014년에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함께 ‘현대문명의 위기’란 책을 썼는데 이때 고민했던 문제가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이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야별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찰하는 내용이었다”며 “그 책에서 각 분야의 학자들이 얘기한 내용과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주장이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 같은 생각은 SH공사 사장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바로 실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SH공사가 지난해부터 적극 추진하고 있는 주거복지사업이다. 그동안 SH공사는 임대주택의 건물 관리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해 왔다. 주택을 관리하는 기관 이름도 통합관리센터였다. 하지만 변 사장은 취임 이후 이름을 주거복지단으로 바꿨고 임대주택 입주민, 즉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변창흠 SH공사 사장이 회사 CI(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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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어린이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입주민들을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며, 공유공간인 작은도서관·노인정 등을 만들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입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자본주의 속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빈곤층에게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공공이 할 일이 아니란 게 그의 생각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공이 개입해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변 사장은 “돈 되는 일만 하는 것은 공공의 역할이 아니다. 주거분야에서도 SH공사가 시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며 “그렇다고 기업이 적자를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공익성과 영리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회가 극단적 이윤만 추구할 게 아니라 협력적 공유를 살려야 지속가능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얘기하는 바로 그 공유 사회를 서울에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대규모 개발이 아닌 도시 재생이다. 수십년간 사람들이 함께 살아온 마을을 다 뒤엎어 사람들을 내쫓고 대규모 아파트촌을 조성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SH공사가 골목을 살리고 이웃과 함께 공유하면서 살 수 있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나서는 것도 같은 취지다.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에서 가장 불편해하는 주차장과 무인택배함, 작은도서관 등 커뮤니티 시설을 설치해 주고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면 굳이 대규모 개발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만한 마을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같은 일을 하거나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 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홀몸어르신주택, 모자가정주택, 의료안심주택, 도전숙(청년창업자 위한 주택), 독립숙(독립유공자 위한 주택), 둘리숙(만화가 위한 주택) 등이 서울시와 SH공사가 만들고 있는 공동체 주택들이다. SH공사는 앞으로도 다양한 공동체 주택 모델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변 사장은 “처음 SH공사 사장 제안을 받았을 때 학자로서 그동안 고민하면서 정립한 주택·도시에 대한 방향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도 초심을 기억하며 살만한 서울을 만들고 싶다”고 소망을 말했다.
△변창흠 사장은 1965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도시계획학 석사·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SH공사 연구개발실 선임연구원과 2000년 서울시의 정책자문기관인 서울연구원 도시경영부 부연구위원으로 일하며 서울시와 인연을 맺었다. 2003년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에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자문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도시·주택분야 전문가다. 2014년 11월 서울시 SH공사의 새 수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