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실패로 수천억 날린 사장님 배임죄 무죄 왜?

by전재욱 기자
2016.01.25 05:00:00

기업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15일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빠져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경영상의 판단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문제를 놓고 법조계 내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배임죄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반대쪽에서는 경영자의 폭주를 막을 제동장치라고 맞선다. 위 사례에서는 A씨가 배임죄 처벌 대상이다. 배임죄가 어떻게 성립하고, 유무죄를 가르는 요건은 무엇인지 사례로 분석해봤다.

우선 배임죄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한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이득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해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다.

다만 손해가 날 것이라는 인식 즉 고의성이 반드시 들어가야 배임죄가 완성된다. 손해는 실제 손해뿐 아니라 손해 위험까지 포함한다. 또 손해 산정은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결론적으로 손해가 났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손해가 날 가능성을 몰랐다면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A씨 사례를 배임죄에 대입하면 형사처벌 받을 여지가 있다. A씨는 B사가 쓰러져가는 줄 알고 투자를 했고(고의성), A씨 탓에 회사는 1억원을 유용하게 쓸 기회를 잃었고(실제 손해), A씨 회사는 B사가 그대로 쓰러질 위험을 감수해야(손해 가능성) 했다.

부당 지원을 이유로 처벌받은 대표적 사례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2014년 기업비리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때 법원인 김 회장이 그룹 우량 계열사 5곳에서 8806억원을 끌어다가 위장 계열사 3곳을 지원한 것을 배임으로 판단했다. 이들 회사를 지원하면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담보도 없었다. 계열사 5곳 중 손실을 본 곳은 없었지만 법원은 ‘손해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는 점을 들어 배임죄를 인정했다.



배임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인 ‘고의성’은 주관적 감정이어서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렵다. 배임사건 피고인 대부분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실을 인정하되 고의성 의도는 부인한다. 그래서 배임죄 재판은 결국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는 다툼이 된다. 배임 사건이 어렵다고 법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한 판사는 “사람의 마음속을 법관이 알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정에서의 고의성 입증은 유죄의 의심이 강하게 드는 미심쩍은 정황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한화의 경우 김 회장이 부당지원한 회사가 총수 일가와 가까웠던 점이 고의성 입증에 중요 판단 기준이 됐다.

그러나 당사자끼리 가까운 관계라는 점은 무조건 유죄의 증거일 수 없다.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석채 전 KT 회장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지인과 친척이 운영하는 부실회사 3곳을 인수해 KT에 총 103억여원의 손해를 끼쳐 기소됐다. 법원은 “친분관계를 이유로 부당한 투자를 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였다는 판단에서다. 경영상의 판단이 잘못됐을 뿐 고의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건도 비슷한 사례다. 강 전 사장은 재임 시절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Harvest)를 인수하면서 정유 부문 자회사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을 인수했다가 55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검찰은 강 전 사장이 경영 성과에 집착해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일어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사의 사업 다각화를 위해 충분히 필요한 인수합병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익명의 판사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으면 의심스러워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 재판의 대원칙이 가장 폭넓게 적용되는 게 배임죄”라고 말했다.

법규정이 모호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배임죄 조항에 ‘손해를 가할 명백한 목적으로’라는 문구를 넣어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배임죄를 지금의 틀로 유지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주요 배임사건 소송 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