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C2012]해외 플랜트시장은 국가대항戰

by신혜리 기자
2012.03.22 08:00:00

특별기고 = 양환준 수출입은행 금융자문실장

[이데일리 신혜리 기자] 우리 기업들은 지난 2007년 총 사업비 12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석유화학공사(SABIC)의 카얀 석유화학사업을 시작으로 2009년 UAE 정유공사의 루와이스 정유사업(96억 달러), 사우디 국영석유회사(Aramco)의 주베일 정유사업(120억 달러)을 수주했다.

이어 2010년 UAE 원전사업(186억 달러), 2011년 사우디 쿠라야 민자발전사업(21억 달러) 등 중동의 주요 국영회사들이 발주한 초대형 사업의 주계약자로 참여해 정유와 석유화학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는 해외 플랜트 수주액이 7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최대 플랜트 수주국인 사우디가 제2의 건설부흥기를 맞고 있을 정도로 발주물량이 늘고 있고, 쿠웨이트와 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와 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수의 인프라 확충사업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재스민 혁명 이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인프라 복구사업 수요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해외 플랜트 수주 700억 달러 달성을 위해선 난관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일본 플랜트 수출기업들이 금융 경쟁력과 자금력, 정보력을 앞세워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유럽 기업들도 유로화 약세에 따라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건설업체들도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후발주자로서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작년 하반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PF는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자산에 기초해 대출해주는 금융기법으로 사업주는 리스크를 덜 수 있고, 투자자는 투자지분만큼 수익을 챙길 수 있어 대규모 사업 추진시 주로 활용된다.


지난해 글로벌 PF금융시장 규모는 2358억 달러로 전년대비 소폭 확대됐다. 하지만 쿠웨이트와 UAE 등 정부 예산으로 플랜트를 발주하던 국가들이 PF 금융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도 시장이 크게 확대되지 않았고, 오히려 4분기 이후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어 올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로 PF 금융시장을 주도하던 유럽 금융회사들의 신규사업 참여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유럽은행들은 신용등급 하향조정과 함께 외화 차입비용이 높아진데다 자산매각과 대출축소 등을 통한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어 신규사업 참여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에 따라 최근 각국의 수출신용기관(ECA)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자간금융기구(MDB)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동의 메가 프로젝트에서도 ECA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등 ECA의 금융지원의향서 없이는 사실상 프로젝트 수주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카타르의 바르잔(Barzan) 가스설비 프로젝트(총 사업비 100억 달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업주인 카타르석유공사와 엑슨모빌은 70억 달러에 달하는 차입금 조달을 위해 한국과 일본 등 4개국 ECA에 여신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각국 ECA들은 자국 기업들의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차입금의 약 40%에 달하는 PF 금융지원에 나섰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Aramco)가 추진한 사우디 주베일 정유설비 프로젝트(총 사업비 120억 달러)도 유사한 사례다. 사업주인 아람코와 토탈은 차입금의 약 35%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 ECA에 지원을 요청했다. 나머지 자금은 국제상업은행과 중동계 금융기관, 사우디 국부펀드 등을 통해 조달했다.

특히 아람코는 최초로 10억 달러 상당의 이슬람 프로젝트 채권(Sukuk)을 발행하기도 했다. 아람코는 현재 추진중인 세계 최대규모의 사다라(Sadara) 석유화학 프로젝트에서도 이슬람 프로젝트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어 PF 금융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PF 금융시장의 침체와 함께 해외 플랜트 발주처들이 입찰참여 조건으로 PF 금융조달까지 요구하는 '선금융 후발주' 형태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금융조달 능력이 프로젝트 수주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기업들 역시 단순한 플랜트 수출만으로는 수익창출 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프로젝트를 직접 개발(Planning)해 사업주(Sponsor)로 참여하면서 직접 시공(EPC)과 운영(O&M)도 담당하는 투자개발형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민자발전과 자원개발, 녹색성장 사업 등을 중심으로 이러한 추세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해외 대형 플랜트 수주시장이 해당 기업은 물론 금융회사와 정부가 함께 경쟁하는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짐에 따라 수출입은행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작년 7월 금융자문실을 신설해 프로젝트 발굴부터 금융자문과 주선, 자금지원까지 일괄적인 금융서비스 제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에 이어 세계 2위의 금융지원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은 올해도 국내외 금융회사들과 정례적인 협력채널을 가동하는 등 해외사업 공동지원을 위한 공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중동지역내 현지화 파이낸싱과 프로젝트 채권 발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연계한 복합금융 지원 등 PF 금융시장 변화에 대응해 금융지원 방식도 지속적으로 다각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