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기수 기자
2005.04.24 10:25:00
신규 자금지원 全無..실효성 의문
비현실적 대책에 은행들 `나몰라라`
청년층 회복지원도 걸음마 단계
[edaily 박기수기자] 정부의 생계형 신용불량자 지원대책이 발표된지 한달이 지났지만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은 물론 채무 재조정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설사 이들에 대한 채무 재조정이 이뤄지더라도 은행들이 내부 리스크 관리 등을 이유로 실제로 신규로 대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자영업자에 대한 신불자 대책은 `용두사미`에 그칠 전망이다.
신규 자금지원 한 건도 없어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정부는 `3.23 대책`을 통해 청년층 및 영세 자영업자 신용불량자와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원금상환 유예 및 분할상환, 이자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자영업 신불자에 대해서는 이런 채무 조정이외에도 은행권을 통한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
하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 은행권중 영세 자영업 신불자에게 신규로 대출을 해준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씨티은행이나 최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넘어간 제일은행은 자영업 신불자 대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도 내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신복위 채무재조정 절차 오래 걸려..은행내부 대출심사도 걸림돌
이처럼 한 건 조차 없는 것은 국민은행, 신한은행, 조흥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신불자가 먼저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채무 재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은행들은 3.23 대책 이후 새로 마련된 신용회복지원협약에 따라 단독 및 다중 채무자 모두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 재조정을 받는 뒤에야 자체적으로 자금 지원을 검토해 보겠다는 것.
채무 조정을 담당하는 신용회복위원회도 신불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이를 완료하기까지 빨라야 한달 가량 걸리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영업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 완료 사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이런 상황에서 위원회에 공을 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자영업 신불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 신청이 3.23대책 이후 지금까지 4000여건이 들어왔으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채무 조정을 완료하려 하지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까지 은행에 채무 조정 완료자를 넘겨 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설사 위원회가 빠른 시일 내에 자영업 신불자에 대해 채무 재조정을 완료해 해당 은행에 통보하더라도 실제로 대출이 나갈 가능성은 매우 낮는 것.
이번 대책은 연 매출 4800만원 이하의 자영업 신불자에 대해 위원회의 신용회복지원과 함께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에 따라 대출을 해 주도록 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먼저 채무 재조정이 완료됐더라도 신불자 자신의 신용상태나 재활능력 등은 이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자금을 신규로 대출해 줄 수는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이미 금융기관에 손실을 끼친 사람한테 갑자기 정부 방침이라고 해서 돈을 내주고, 또 이게 부실이 된다면 카드 대란과 뭐가 다르겠냐"면서 "자칫 잘못되면 새로운 형태의 모럴해저드가 될 수 있다"며 자금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설령 우수한 사업비전을 가지고 신규 대출을 원하는 자영업자라 해도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때문에 대출이 이뤄지긴 어렵다. 사업성이 우수한 프랜차이즈를 하려는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신불자라면 내부 시스템에서 `불합격`을 내린다는 것.
충당금(대출 후 떼일 위험에 대비해 미리 쌓아놓은 돈)을 얼마나 쌓을지도 문제다. 통상 신불자의 경우에는 고정 이하 여신으로 분류해 20% 가량 쌓지만, 이번에 대출해 준다면 그 기준조차도 애매하다는 게 은행의 설명이다.
B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겉으로는 신용회복위원회의 통보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고금리가 아니면 대출해 주기 어렵다"면서 "정부 권고안에 따르면 최대 2000만원까지 6~8%의 금리로 대출하도록 했는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손을 놓고 있는 반해 예외적으로 우리은행만이 단독 채무자를 대상으로 내부적으로 자영업 신불자 6800여명을 추려 최근 16명을 상담하고 있지만 진행상황은 역시 신통치 않다.
아울러 자영업 신불자와 함께 군인, 전경, 대학생 등 청년층 실업자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서도 신용회복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홍보 부족 등을 이유로 걸음마 단계에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채무 재조정의 경우에는 이번 3.23 대책 이전에도 이뤄지는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자영업자 신규대출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처럼 현실성이 떨어진 탓에 `용두사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