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개헌’ 수용해야 하는 이유[정치프리즘]
by최은영 기자
2025.03.10 05:15:00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탄핵 정국에서 헌법을 고치는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탄생한 제6공화국 헌법이 생명을 다했다는 의미다. 여당인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개헌 논의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경우 언제라도 출마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잠룡은 그 기능을 다한 권력 구조를 바꾸고 시대 변화에 걸맞은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만약에 조기 대선이 있을 경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2028 국회의원 선거에 대통령 선출 시기를 맞추는 ‘임기 단축 개헌’을 정치 복귀 카드로 들고 나왔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어떤 형태의 개헌이든 불가(不可)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대표가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우선 ‘탄핵 이슈 집중’으로 해석된다. 만약에 이 대표가 개헌에 손을 들어주는 순간 탄핵에 대한 시선이 개헌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얻는 실익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선두 주자 견제’를 들 수 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나 김동연 경기지사 등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쏟아내는 비명계나 여당 의원들이 개헌 주제를 쏘아 올리면 의회 권력을 쥐고 있는 이 대표까지 개헌을 통한 개혁 대상으로 보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다 보니 이 대표가 개헌으로 얻을 이익은 미미하고 도리어 유리한 고지에서 내려와야 하는 불상사마저 생길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개헌 논의에 주저하는 이 대표를 겨냥해 “5년 임기는 버리지 못하겠다는 자세로는 (개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지율을 더 얻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개헌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도층에서 개헌에 대한 호응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지난 3월 4~6일 실시한 조사(전국 1003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p, 응답률 14.2%,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지’ 물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54%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헌이 불필요하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30%에 불과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절반이 넘는다. 전체 결과도 그렇지만 중도층에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9%로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 29%보다 30%p나 더 높게 나타났다. 정치 성향을 진보층이나 보수층이라고 밝힌 응답자보다 중도층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많다.
최근 이 대표는 중도 외연 확장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아예 이념 성향을 ‘중도 보수’로 표방했고 각종 정책 발표는 중도를 뛰어넘어 보수 정치인으로 의심을 살 정도다. 국회 연설에서 ‘주 4일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발표했고 핵 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에 대해 민주당 내 검토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 윤석열 정부의 공약으로 거론된 ‘상속세법’과 관련 이 대표는 국민의힘과 1 대 1 토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급기야 국민의힘이 제안한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대해 동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중도층뿐만 아니라 2030 MZ세대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미국의 엔비디아를 소환했다. 이 대표는 ‘한국판 엔비디아’의 탄생을 가정하며 “민간이 지분을 70% 갖고 30%는 국민 모두가 갖도록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을 비롯해 보수 진영은 이 대표의 한국판 엔비디아 발언에 대해 맹공격을 퍼부을 수준으로 극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극항로’ 발언에 비하면 엔비디아는 얌전한 편이다. 지난 6일 부산을 찾은 이 대표는 “북극항로는 규모가 작지만 정기항로가 개척돼서 운행 중”이라며 “2030년대가 되면 활발하게 이용하지 않겠냐고 모두가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3~4주 동안 이 대표는 왕성한 중도 확장 행보를 해왔다. 그렇지만 한국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 결과를 보면 2월 한 달 동안 이 대표의 지지율은 거의 올라가지 못했다. 이런 지지율 고착 상태에서 개헌은 중도층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원하는 사안이다. 중도층 지지율 확보를 원한다면 이 대표에게 개헌은 피할 수 없는, 아니 피하지 말아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