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클러스터' 전기 없어 못 돌릴판.. 전력망 '비상'

by김소연 기자
2024.08.26 05:30:3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암초 만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해법은
10GW 필요…지방 발전소서 끌어와야
지자체 반대…송전망 건설 지연·무산
입지·민원 등 한전 혼자 감당 못해
특별법 논의 중인 국회, 더 서둘러야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는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781억달러 (약 104조 3000억원)로 전체 수출액의 19.89%에 이른다. 전체 수출의 20%가 반도체에 쏠려 있는 만큼 반도체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중국·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반도체 관련 지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를 구축해 무려 500조원 투자를 유치한다고 계획했다. 세계 최대 규모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 속에 우위를 점하려면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기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현재 용인 이동·남사읍 일대 220만평에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 6기를 건설하는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다. 이곳엔 ‘메모리-파운드리-디자인하우스-팹리스-소부장’ 등 반도체 전 분야를 아우르는 클러스터가 탄생한다. SK하이닉스는 원삼면에 122조원을 투자해 팹(Fab) 4기를 세우는 클러스터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용인 클러스터의 첫 번째 팹과 업무 시설을 건설하는 데에 약 9조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팹은 내년 3월 착공해 오는 2027년 5월 준공 예정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은 부지, 도로, 용수, 인력뿐 아니라 연중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력이 필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은 전통 원전 10기에 상응하는 10기가와트(GW) 수준에 이른다. 전력 당국은 우선 3GW는 해당 부지에 신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지어 대응하고, 나머지는 초고압 송전망을 보강해 영동 및 호남권 지역에서 공급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결국 신규 송전망을 제때에 건설해야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돌아갈 수 있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전력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극심한 기후 변화 탓에 냉난방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며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산업 단지 건설로 전력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 1월에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향후 15년 동안 발전설비는 78%, 송전설비는 64%, 변전설비는 49% 각각 증가해야 한다.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전력설비에 해당하는 규모를 15년 안에 추가로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장거리 송전망 건설 지연은 절망적인 지경이다. 10여년 전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망을 건설하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다. 그 이후 장거리 송전망 건설은 극단적인 민원을 겪고 있다. 다양한 환경 규제와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 주민 보상 시스템의 한계 등으로 신규 송전망의 준공 지연은 일상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동해안의 낮은 원가 전기를 수도권으로 전송하는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는 5년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충남지역의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무려 12년 6개월이나 준공이 지연되고 있다. 발전소는 건설됐는데 송전망이 부족해 낭비하는 돈이 연간 수조원에 이른다. 또 한울원자력본부가 있는 경북 울진에서 하남시까지 280㎞를 잇기로 한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HVDC) 송전선로 구축 사업이 하남시의 변전소 증설 불허 결정으로 막힌 상태다. 수도권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전력 수요 증가가 예정돼 있어, 현재 전력망으로는 감당이 어렵다. 이에 한전은 하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례를 보면 행정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3년 넘게 걸릴 수 있는 만큼 수도권 전력 수급 차질이 우려된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최근 발표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전력수급 애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신규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장거리 송전선로 신축 등 송·변전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송·변전망 적기 준공률은 17%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3년 5개월 지연되고 있다. 전남 카카오 데이터센터나 인천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등 송·변전망 확보가 지연돼 투자가 위축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초고압 기간 송전망의 적기 건설을 위해 입지 선정부터 사업인 허가, 시공관리, 보상체계, 관련 법령과 정부 거버넌스 등 모든 영역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이를 한전이 도맡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부를 아우르는 범부처 성격의 기구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력망의 적기 보강은 첨단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넘어, AI 시대 주도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범부처를 아우르는 정부의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절실한 이유다.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설립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기는 내용이 골자다. 위원회에서 관계부처와 지자체, 지역 주민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한전이 온전히 전력망과 관련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 법안은 앞서 제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후 현재 제22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그러나 논의 진척 정도는 지지부진하다. 전력망 위기를 해결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라도 관련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