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 대놓고 베꼈네" 자존심도 버린 日라면 원조 '닛신'[먹어보고서]

by한전진 기자
2024.08.25 08:05:00

삼양식품 '불닭' 대놓고 본 딴 닛신 볶음면
맵기 줄이고 현지화…고소함 강조
비슷하지만 매운맛 확연한 차이
日라면 원조도 따라 하는 K라면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을 카피한 닛신의 치즈 볶음면 제품 (사진=한전진 기자)
매대에서 마주한 순간 삼양식품(003230)의 불닭볶음면인 줄 알았다. 제품 앞면 ‘볶음면’이라는 한글이 적혀있다. ‘한국풍’(韓國風) 등 곳곳에 한국 콘셉트를 내세운 문구도 눈에 띈다. 까르보, 치즈 등 일반 불닭볶음면처럼 종류도 여러 가지다. 맛도 제법 비슷하다. 원조만큼 맵진 않지만 특유의 매력 포인트를 잘 모방했다. 오히려 덜 맵고 고소한 면발이 ‘맵찔이’(?)에겐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삼양식품(003230) 불닭볶음면의 인기에 일본 라면 원조 기업 ‘닛신’도 베끼기에 열심이다. 포장부터 맛까지 ‘미투;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닛신은 지난해 4월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본 딴 제품을 내놓더니 올해 2월엔 치즈 불닭볶음면까지 따라 한 제품을 출시했다. 애초에 모방한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노골적인 디자인으로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슈가 됐다.

과연 맛은 어떨까. 모처럼 일본을 방문해 제품을 구매할 기회가 생겼다. 일반 식료품점에서 제품을 쉽게 구했다. 제품 바로 옆에는 원조 치즈 불닭볶음면도 있었다. 거의 유사해서 무심코 보면 착각을 할 정도였다. 가격은 5개입 개당 85엔으로 한화로 800원가량이었다. 일본에서 일반 인스턴트 라면이 100엔대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축에 속했다.

닛신 치즈 볶음면(왼쪽)과 삼양식품의 4가지 치즈 불닭볶음면 (사진=한전진 기자)
겉과 달리 내용물은 차이가 있었다. 삼양 제품의 면발은 흰색에 가까운 반면 닛신 제품은 노란 색감에 가까웠다. 중량과 칼로리는 삼양 145g·575 ㎉, 닛신 102g·485㎉ 이었다. 수프 역시 삼양은 액상과 후첨 수프였고 닛신은 분말수프가 다였다.



조리법도 달랐다. 삼양은 물 600㎖를 넣고 끓여 일부 물을 버리는 방법이었다면 닛신은 260㎖ 넣고 끝까지 졸이는 방식이었다.

삼양 제품과 비교하면 닛신 제품은 3분의 1 정도의 맵기다. 먹다 보면 고춧가루로 보이는 작은 입자도 보인다. 면에선 일본 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난다. 눅진하고 매콤한 치즈 불닭볶음면의 매력을 닛신 제품에서도 느꼈다. 물을 버리지 않는 조리법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원조를 따라 할 수 없는 아류의 느낌이 곳곳에 있다. 삼양 제품은 다소 시간이 지나도 면의 꼬들꼬들한 식감이 유지된다. 다만 닛신 제품은 먹다 보면 면이 금방 불어 흐물해진다. 이 때문에 면에 배이는 소스도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소스 자체가 비교 불가다. 불닭 액상 수프의 은은한 매운맛에 익숙해진 이들이라면 닛신 제품은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삼양 4가지 치즈 볶음면(왼쪽)과 닛신 치즈 볶음면 (사진=한전진 기자)
결론적으로 닛신 제품은 전형적인 미투 제품이었다. 약한 맵기를 제외하면 차별화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문제는 앞으로 닛신이 모방 제품을 계속 쏟아낼 가능성이다. 삼양은 상표권만으로는 법적 대응이 어려워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한 마케팅 등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그만큼 닛신 제품과의 품질 차이가 명확하다는 자신감이다. 세계인이 불닭볶음면에 열광하는 이유는 깊은 매운맛이 주는 ‘희열’이다. K매운맛 특유의 감칠맛이 계속 먹고 싶게 만든다. 먹고 나면 운동을 한 것처럼 땀이 나면서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닛신 제품에선 이런 느낌이 없다.

닛신의 모방 제품 출시가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닛신은 1958년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든 일본 라면업계의 원조격 기업이다. 그런 닛신이 이제는 한국의 삼양을 모방한다는 건 그만큼 K라면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과거에는 새우깡, 초코송이, 빼빼로 등 국내 제과업체가 일본 제품을 모방해 내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된 셈이다.

닛신 볶음면과 삼양 불닭볶음면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