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황효원 기자
2021.01.01 00:08:24
''양진호·조현민 못지 않은 우리 사장님" 2020년 10대 직장갑질
반쪽짜리 ''괴롭힘 금지법'' 개정 시급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을 시행한 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회사 내 ‘갑’들의 갑질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근로자들은 무급휴직, 해고협박까지 견뎌야 했던 한 해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직장갑질지수’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갑질 지수는 25.6점으로 2019년(30.5점보다 5.1점 낮아졌다.
법 시행 이후 근로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다소 감소했지만 비정규직 여성·청년·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록치 이 결과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응답은 여성(52.7%)이 남성(43.1%)보다 높았고, 비정규직(50.8%)이 정규직(38.0%)보다 높았다. 마찬가지로 5인 미만 사업장(49.0%)이 300인 이상 사업장(35.6%)보다 13.4%p 높았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들을 감싸는 근로감독관들의 막말로 2차 피해를 받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민단체 119가 공개한 근로감독관의 막말 피해 사례로는 ‘나도 그런 일이 있는데 그럼 나도 괴롭힘이냐’,‘그게 무슨 괴롭힘이냐’ 등 직장 내 갑질 피해를 별일 아닌 일처럼 축소하는 발언이 적지 않았다.
또 법적 분쟁이 되면 서로에게 피해가 있다거나 신고의 실익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는 화해를 종용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근로감독 제도 개선을 위해 고용노동부 내 근로감독청을 신설해야 한다고 전했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반쪽짜리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접수된 갑실 사례 중 10건을 선정해 폭행·모욕·잡무지시 등 부문을 나눠 ‘2020 10대 갑질 대상’을 발표했다.
폭행 부문은 ‘엽기 갑질 폭행’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이름이, 잡무지시 부문에는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논란을 빚은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원청 갑질 부문에는 ‘물컵 갑질’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이름이 꼽혔다.
직장인 A씨는 “차에 같이 타고 있을 때 제 머리를 손으로 두 차례 가격하고 실수했다는 이유로 ‘XX새끼 한숨 쉬냐? 등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는 상사를 신고했다. A씨의 사례는 양진호상으로 선정됐다.
직원을 자신의 별장에 불러 밭의 잡초를 뽑게 하고 김장을 시킨 데 이어 매달 야외활동이라는 이름으로 1박2일간 별장 주변 나무 심기, 울타리 공사 등을 지시한 사장은 조현민상(원청갑질)에 꼽혔다. 종합 갑질 부문인 ‘갑질대마왕상’은 성추행·폭언·부당해고 등 10가지 갑질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한 중소기업 사장에게 돌아갔다.
이밖에 △“알바 써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너 돈 주고 써줬으면 엎어져 절이라도 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대기업 화장품 회사 지점장(모욕대상) △화장실 이용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한 회사(황당무상) 등이 10대 갑질 사례에 선정됐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인들은 여전히 다양한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계 등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노동청 신고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