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빛 못본 참여정부 조세개혁안…‘부동산 보유세·거래세’ 패키지 개편안 있었다

by박종오 기자
2017.10.08 07:00:0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참여정부가 중장기 조세 개혁 방안의 하나로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을 확정,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주식 역시 양도소득세 과세를 강화하는 대신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포함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참여정부의 조세 개혁안은 당시 거센 증세(增稅) 논란을 부르며 끝내 외부에 발표하지 못했다. 이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도 참여정부처럼 중장기 조세 개혁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터라,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8일 참여정부 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산하 조세개혁특별위원회(이하 조세특위)에서 활동했던 고위 관계자는 “당시 위원회가 마련한 조세 개혁 방안에 부동산 재산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이 있었다”고 밝혔다.

부동산에 붙는 세금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와 취득세·양도소득세 등 거래세로 나뉜다. 보유세는 부동산을 소유한 대가로 내고, 거래세는 부동산을 사고팔 때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 관계자 말은 참여정부 조세특위가 부동산 보유세 중 재산세 과세 강화, 거래세 과세 완화라는 ‘부동산 세제 패키지 개편’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조세 개혁안에는 주식 거래로 얻은 차익에 양도소득세 과세를 강화하는 대신 증권거래세를 낮추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했다.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팔 때 내는 세금이다. 주식 투자로 손해를 봐도 매도금액의 0.3%(유가증권 시장은 농어촌특별세 포함 세율)를 세금으로 뗀다. 반면 주식 매매로 발생한 양도 차익에 물리는 양도소득세는 상장 법인의 경우 세법상 대주주에게만 과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세법을 개정해 상장법인의 대주주 요건을 확대하는 등 주식 양도세 과세를 강화할 예정인데, 과거 참여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증권거래세를 함께 낮춰 자본시장 과세를 아예 자본이득세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려 했다는 것이다.

세수 증가에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는 부가가치세 세율(현재 10%) 인상은 참여정부 조세 개혁안에도 담기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부가세 인상은 어떤 정권도 정치적으로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카드”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두루 담은 당시 조세특위의 중장기 조세 개혁 안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증세안이 담겼으리라는 여론 반발에 떠밀려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급기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보고서는 이미 완성한 상태였다”면서 “그러나 (사실상 세수 효과를 따져보면 전체적으로는 증세가 아닌데도) 언론에서 증세 쪽 내용만 부각해 보도하는 통에 난리를 치르다가 보고서를 끝내 발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 조세특위는 2005년 1월 노무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조세 제도 전반의 개혁을 목적으로 그해 3월 공식 출범했다. 애초 2006년 2월 공청회를 개최해 개혁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보고서 유출, 위원장 사퇴, 지방선거와 차기 대통령 선거를 고려한 발표 연기 등 갖은 내홍을 겪다가 정권이 바뀌며 중장기 조세 개혁 추진은 전혀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미공개된 조세특위 보고서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는 연내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특위가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부동산 보유세 과세 강화, 경유세 세율 인상 등 증세 방안을 포함한 중장기 조세 개혁 로드맵을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특위 설치 방안과 역할, 과제 등이 참여정부의 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과거와의 차이는 문재인 정부 특위가 정권 출범 첫해부터 가동한다는 것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증세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이전보다 확산했다는 점 등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초(超)고소득자와 초고소득 법인,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 등 증세 대상을 매우 제한적으로 한정하고 있다. 여론 반발을 고려해서다. 주식 양도소득세와 보유세 과세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반대의 거래세 인하 얘기는 쏙 빼놓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과거 흐지부지됐던 특위의 논의 내용과 경험이 향후 새 정부의 증세 등 세제 개혁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로부터 ‘세제 개혁 방안’을 보고받으며 조세 개혁 추진 체계를 만들라고 지시해 설립한 기구. 2005년 3월 혁신위 내 조세개혁특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재정경제부 안에 실무를 뒷받침할 사무처 역할의 조세개혁실무기획단이 설치됐다.

특위는 당초 2006년 2월 공청회를 열고 중장기 조세 개혁 방안을 공개해 여론 의견을 수렴하려 했다. 하지만 보고서 사전 유출로 담당 국장이 보직 해임되고, 2006년 4월 초대 위원장이었던 곽태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석연찮은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위원회도 공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미 2005년 ‘8·31 부동산 대책’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강화, 같은 해 8월 발표한 세법 개정안의 ‘소수 공제자 추가 공제 폐지’ 방침에 따른 반발,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비한 ‘비전 2030’ 공개 후 불붙은 추가 증세 논란 등으로 정부의 조세 정책을 향한 여론이 나빠질 데로 나빠진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특위의 중장기 조세 개혁 보고서 발표 시기도 2006년 2월에서 그해 5·31 지방선거 이후, 9월 정기국회, 2006년 말, 2007년 3월 등으로 계속 연기됐다. 결국에는 참여정부와 정반대인 ‘감세’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들어서면서 조세 개혁 정부안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임인 유일호 전 부총리가 2006년 곽태원 교수 뒤를 이어 후임 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참여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기획단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상길 서기관이 현재 기재부 조세정책과장으로 다시 문재인 정부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