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양적완화]①경기 살리려 돈 풀었더니…자산거품만 꼈다
by김정남 기자
2016.10.17 05:00:00
선진국 중앙은행, 금융위기 직후 양적완화 정책
경기는 못 살리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만 급등해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김정남 기자]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위치한 셰일오일업체 PDC에너지. 이 회사가 지난달 4억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하자 4배에 달하는 15억달러가 몰렸다. 회사채는 순식간에 동났다.
PDC에너지는 탄탄한 회사가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6000만달러가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신용등급은 투자적격등급보다 4단계나 아래에 있는 투기등급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정크본드’라고 부른다. 쓰레기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서로 사가려는 품귀현상이 나타난 건 이례적이다.
미국 정크본드 시장은 최근 유례없는 호황이다. 그 바탕에는 인류사 이래 최저 수준인 초저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금리가 극도로 낮아지자 수익률에 대한 자본의 갈증이 커졌고, 아무리 위험해도 금리를 더 받을 수 있는 정크본드까지 몰린 것이다. 유럽 등의 넘치는 유동성도 이 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다.
브리언캐피탈의 피터 치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들이 정크본드의 위험성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신호”라며 우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여, 주요국 중앙은행의 ‘돈 풀기’ 응급처치가 기로에 섰다. 목표했던 경기 회복은 요원해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커지는 와중에 자산가격만 급등하고 있어서다.
17일 이데일리가 2010년 이후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분석해보니, 경기가 눈에 띄게 나아지는 국가는 한 군데도 없었다. 2008~2009년 본격 시작된 양적완화(QE)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2분기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3.9%. 그런데 올해 1분기와 2분기 때는 각각 0.8%, 1.4%까지 하락했다. 그나마 미국은 나은 편이다. 독일(0.4%)과 일본(0.2%)의 올해 2분기 성장률은 0.5%에도 못미친다.
대신 그 돈은 자산가격의 거품을 만들고 있다. UBS그룹에 따르면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뮌헨 등의 부동산 거품 위험도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 독일은 양적완화를 몇 년째 시행 중이고, 스웨덴은 정책금리를 마이너스(-0.5%)로 낮췄다. 현재 부동산과 채권 등의 가격은 과대 평가됐으며, 급락 우려가 있다는 관측도 많다.
한국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극약처방까지 가진 않았지만, 정책금리 1.25%는 사상 최저다. 그 기간 중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인 곳은 부동산과 채권 등에 불과하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각국이 공격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경기는 미국만 미약하나마 살아났다”면서 “경기개선 효과가 없는데다 자산가격만 강해지는 부작용까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제로(0)로 떨어뜨려도 경기가 살지 않자, 장기국채 등을 직접 매입해서 장기금리도 하락시키려는 정책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국채 등 자산을 사들이면 그만큼 시중에 유동성이 풀린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이 맡긴 지급준비금 등에 이자를 주지 않고 오히려 수수료(마이너스금리)를 받는 정책을 말한다. 시중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대출 확대에 나서 소비와 투자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