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저의 역설]①80년대식 '3저 호황'은 없다
by김정남 기자
2016.01.19 05:00:00
''저유가·저금리·원저'' 3저 또 왔지만 지금은 아우성만
저금리 탓 가계부채 급증…원저 이점도 예년만 못 해
11.2%. 12.5%. 11.9%. 지금은 믿기 어려운 수치이겠지만 우리나라가 지난 1986~1988년 실제 기록했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다. 이른바 ‘3저(저유가·저금리·원화약세)’ 덕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에 다시 ‘신 3저’가 찾아왔지만 환호성은 들리지 않고 아우성만 점점 커질 뿐이다. 왜 그럴까. 이데일리가 연초부터 요동치는 우리 경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정남 경계영 기자]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A(37)씨는 매달 내는 100만원 가까운 대출이자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대기업 유통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는 동갑내기 남편 B씨와 자녀 계획도 미뤘다. 불어날 지출 탓에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결혼 초 무리해서 구입한 20평대 초반 아파트는 그 사이 1억5000만원 이상 올랐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A씨는 “이사 갈 생각이 없으니 집값이 오른 건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이자 부담에 기억에 남는 외식이 거의 없다”고 했다.
A씨는 얼마 전부터 걱정이 늘었다. 경기 악화로 남편 회사의 상황이 안 좋아진 탓이다.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는 달도 종종 있는데, A씨는 “고정지출이 많아 심리적 부담이 크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비단 A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 경제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저유가·원화약세 등 호재가 돼야 할 ‘신(新) 3저(低)’ 현상에도 우리 경제는 영 신통치 않아서다.
원론적으로 유가와 금리가 낮으면 가계의 소비 여력은 커진다. 하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계부채만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이후 은행 가계대출은 매달 5조원 이상씩 순증하고 있다. 지난해 총 증가규모는 78조2000억원이었는데, 이는 2014년(37조3000억원), 2013년(23조3000억원)보다 훨씬 더 늘어난 것이다.
A씨의 사례에서 보듯 가계부채의 급증은 ‘소비 절벽’으로 이어질 위기다. 저금리의 덫이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셋값 등 생활비용이 높아지고 노후소득이 불안해져 소비가 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기업 역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원화약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도 예전같지 않고, 폭락하는 유가가 보여주듯 전세계 수요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1980년대 ‘3저 호황’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이른바 ‘신 3저의 역설’이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전세계 수요가 굉장히 낮다”면서 “원화가 약세이긴 하지만 경쟁국인 일본, 중국의 통화도 약세이고 IT(정보통신), 자동차 등 경쟁 제품도 겹쳐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