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포커스]경기 체감 온도는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

by권소현 기자
2012.03.03 09:20:00

[이데일리 권소현 김보리 최정희 기자] 올해 정부가 제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7%다. 상반기에는 좀 어렵겠지만 ‘상저하고(上底下高)’로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럽 재정위기가 경착륙하는 극단적인 사태는 없을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낙관론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재정부의 판단과는 달리 실제 몸으로 느끼는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일각에서는 그 때보다도 더 심하다는 한탄까지 들린다. 경제지표가 보여주는 것보다 먹고 살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온도는 영하권이다.
 
지난 1월 31일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에 위치한 종교교회.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있는 노숙인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줄이다. 종교교회 관계자는 “지난 해에는 매주 300명 정도가 찾아와 한 달에 쌀 소비량만 300kg이 넘는다”며 “아무래도 경기가 어렵다 보니 2010년과 비교하면 눈으로 보기에도 50명 가량은 더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밥 한 끼 먹기 위해 급식소를 찾는 노숙자들이 늘어나면서 종로구 내 무료급식소들이 바빠졌다. 단골도 있지만 새로운 얼굴, 즉 최근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신참도 상당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아직 괜찮다고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특히 내수가 걱정이다. 물가는 뛰는데 임금은 찔끔 올라 소비여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 소비는 뚝 떨어졌다. 2월 재정부 그린북에 따르면 지난 1월 백화점 매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4.2% 줄었다. 2008년 12월의 -4.5% 이후 37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작년 11월 -0.5%로 33개월 만에 감소했다가 12월엔 11.0% 증가해 연말 특수를 봤지만 올해 1월엔 설 특수에도 맥없이 추락했다.



매출 감소로 좀처럼 보기 힘든 명품 세일까지 등장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 2월 10~12일 해외 명품을 40~80% 할인 판매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롯데백화점 본점도 총 40~50개 브랜드 제품에 대해 30~70% 할인판매하는 행사를 열었다. 고가 소비재인 자동차 판매도 뚝 떨어졌다. 르노삼성은 뉴 SM7 신차를 내놓았지만 1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7.4% 급감했다. 한국GM과 현대자동차의 신차 판매량 역시 각각 19.6%, 18.5% 감소했다. 실제 자동차공업협회의 1월 자동차 판매량을 보면 전년 동월대비 19.9% 줄어 2년래 최저를 기록했다.
 
이는 연관산업 소비 감소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구리에서 내비게이션과 차량용 오디오 전용 카센터를 운영하는 김모씨(40세)는 요즘 부쩍 한숨을 많이 쉰다. 김 씨는 “신차 판매가 줄다 보니 내비게이션 사제 매립을 하러 오는 손님도 많이 줄었다”며 “작년 이맘 때와 비교해보면 하루 손님이 10명 정도 줄었고 매출은 30%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고가 제품만이 아니다. 1월 할인점 매출도 2% 증가하는데 그쳐 전달 3.7%에 비해 둔화됐다. 소비자들도 전반적으로 지갑을 닫는 분위기다. 결혼 6개월차 신혼인 이모씨(30세)는 “매주 주말이면 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봤는데 한 달에 4번 가던 것을 3번으로 줄였다”며 “마트에 가서 장 보는 것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소매판매 지수도 지난해 4분기에 전기보다 2.2% 하락해 2008년 4분기에 -4.1%를 보인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먹고 사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서비스업종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강남에서 피부 시술을 하는 한 병원 원장은 “지난해 9월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연말에 할인 이벤트를 실시해 겨우 손님을 끌었다”며 “등록금을 내는 시기에는 손님이 또 줄어드는데 3월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도 문제다.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고용통계상으로는 취업자 수가 2년 연속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취업난은 여전하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난은 계속되고 있다. 취업 준비생인 조씨(28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한 후 일본과 무역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심부름꾼 역할만 하다가 1년도 안 돼 그만둔 후 다시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유학은 취업 압박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됐다.
 
실제 20대의 취업난이 가장 심하다. 20대의 고용률은 2000년부터 60%대를 유지해왔으나 2008년부터 50%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7%대에서 나아진 게 없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고졸채용을 늘리는 등 구직자의 눈높이를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 말대로 눈을 낮춰 취업했더라도 회사에 다니면서 또 취업준비를 하는 등 불안정한 계층은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 신입사원 중 3분의 1은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퇴직하는 것이 실상이다. 지난해 초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50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신입사원 중 퇴사한 직원은 31.2%에 달했다. 고졸 취업 활성화도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전문대를 중퇴한 C씨는 “직업전문학교에서 1년 동안 전문교육을 받았지만 고졸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취업하는데 애를 먹었다”며 “기업은 학력을 먼저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집 문제는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40~50대 중에서는 최근 전세금 급등을 보면서 20년 전이 떠오른다는 이들까지 있다. 1990년 초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던 기사가 바로 폭등 전세금 마련 못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해 봄 17명의 세입자들이 목숨을 끊었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이들을 기리는 추도식까지 열렸다. 최근 전세금이 껑충 뛰면서 생활고에 시름시름 앓는 이들이 많아졌다.
 
서울 성동구 20평 대 빌라에 살던 최모씨(36세)는 작년 8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은 그대로 해줄 테니 월 30만원씩 더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주변 전세 값도 모두 올라 전세금에 1억 3000만 원을 대출받아 성북구 20평 대 초반 아파트를 샀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300만원 정도인데 이자와 원금 130만원을 내고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6살 딸의 유치원 비 등을 내고 나면 적자다. 마이너스 통장에 빚만 쌓여가고 있다.
 
집값이라도 오르면 위안이 되련만 제자리 걸음이다. 최 씨는 “내 집이 아니라 은행이 산 집에 월세 사는 기분”이라며 “월급은 똑같고 물가는 올라가니 생활 자체가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전세 값이 뛰면서 월세를 내는 반전세족이 많아졌고, 그만큼 주거비 지출도 늘고 있다. 살림살이가 그만큼 빡빡해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은행이 집계한 전세지수는 지난 1월 105.1로 1년 전 94.2에 비해 11.6% 상승했다. 전년대비 상승률은 작년 4월 두 자릿수로 올라선 이후 11개월 연속 11~13%대 상승률을 이어오고 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항목 가운데 월세물가 전년 대비 상승률은 1~2%에 머물다 작년 8월 3%를 기록한 이후 6개월 연속 3%대를 이어오고 있다.
 
한 두 해 사이에 5000만~7000만원씩 뛴 전세금을 마련하거나 월세를 더 내고 부족해진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빚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 한해 보증한 전세자금대출은 모두 9조 3150억 원이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전년대비 32%, 23% 늘었지만 작년 62% 급증한 것이다. 생활비를 메우기 위한 신용대출도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신용대출은 147조 9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조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자부담은 늘고 이로 인해 생활은 더 쪼들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회복지원 신청자는 9만1336명으로 전년대비 8% 증가했다. 2009년 금융위기로 10만명을 넘었다가 2010년 8만명대로 줄었지만 다시 늘어났다. 가장으로 전세난의 직격탄을 맞은 30~40대가 신청자의 67.2%를 차지했다.
 
최근 7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세금을 올려준 한 모씨는 “1990년대 전세금 폭동 파동이 가끔 생각난다”며 “물가가 싸고 집값 낮은 동남아 같은 곳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강모씨(50세)는 지난해 노후자금으로 고깃집을 냈다. 그러나 옆에 비슷한 고깃집이 들어서자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8개월 만에 1000만원이나 손해를 보고 가게를 헐값에 넘겼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는 552만명에 달한다. 2006년부터 매년 감소세를 보여오던 자영업자는 작년 처음으로 소폭이나마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0년 기준으로 자영업자수는 전체 인구의 23.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영업자 비중(13.6%)보다 1.7배나 높은 수치다.
 
경기가 악화될 경우 가장 많이 타격을 보게 될 계층도 이들이다. 특히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진출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자동차 선팅 서비스를 하는 카센터 주인 김모씨는 “현대나 SK 등에서 선팅 필름을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부착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시장을 야금야금 먹고 있다”며 “안 그래도 힘든데 대기업 때문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로 운영하는데다 나이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인 생계형 자영업자가 2010년 169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은 부도상태는 아니나 경기가 악화되면 언제든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또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연령은 55.9세로 임금근로자(40.8세)와 일반 자영업 종사자 (48.2세)에 비해 높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생계형 자영업 부문의 경쟁이 치열해 종사자들은 소득저하에 시달리고 있다”며 “복지수요를 급팽창시키는 등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