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성 높은 곳 집중…車반도체 늘리고 차세대 NPU 선점해야"

by김정남 기자
2024.02.26 06:00:01

[반도체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日, 자국 車산업 위해 TSMC에 돈 쏟아"
"삼성, ''파운드리 분사'' 특단조치 검토해야"
"정부 보조금 없이 파운드리 경쟁 험난해"

[이데일리 김정남 김응열 기자] 반도체 대전환의 시대다. 미국이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재진출을 계기로 정부와 산업계가 ‘원팀’으로 뭉친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과 대만이 파운드리 ‘윈윈’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만 TSMC가 지난 24일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1공장 개소식을 연 것은 두 나라간 반도체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일본 정부가 외국 회사인 TSMC에 주는 보조금만 1조2000억엔(약 10조7000억원·제2공장 포함)에 달한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인공지능(AI) 시대 공급망의 핵심인 반도체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TSMC와 인텔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까. 이데일리는 25일 유회준 반도체공학회장(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장),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등 반도체 전문가 5인과 함께 긴급 진단을 했다.

일본 정부의 TSMC 유치에 대해서는 AI와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에 따른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재근 학회장은 “일본은 자동차산업이 주력인 나라인데, 전기차 시대 들어서는 고성능 차량용 CMOS 이미지센서(CIS) 등에 대한 수요가 기존 차량 대비 수십배 더 높다”며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해줄 수 있는 TSMC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TSMC 구마모토 공장의 운영 자회사인 JASM에 TSMC 외에 소니, 덴소, 토요타 등이 출자한 것은 이 때문이다. CIS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감지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시스템반도체다. 현재 소니가 세계 1위다. 소니가 JASM에 인력을 파견하면서 전공정과 후공정 모두 협력한다면, 토요타 등은 차량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이종환 교수는 “(AI 시대로 넘어가면서) 일본 내에서는 한국과 대만에 밀린 반도체를 지금 따라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생겼다”며 “일본이 강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TSMC 유치와 함께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삼성전자(005930)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다. 전문가들은 파운드리 전략을 중심으로 여러 조언을 내놓았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굴지의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들이 포진한 미국이 분업 구조의 키를 쥐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하면서 “초미세 공정이 아닌 파운드리는 미국과 더 밀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TSMC가 최선단은 대만에 놓되, 나머지는 해외로 점차 눈을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미국 팹리스가 물량을 주지 않으면 삼성 파운드리는 살아날 수 없다”며 “한국의 안보 위험을 헤징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차량용 반도체 위탁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많았다. 박재근 학회장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오는 2030년이면 메모리의 절반 정도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사업을 확대하지 않으면 현대차(005380), 기아(000270) 등은 해외에서 사와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네덜란드 NXP, 일본 르네사스,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 등에 비해 차량용 반도체 설계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파운드리사업부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모비스(012330)가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를 삼성전자를 통해 생산하는 것은 하나의 전략으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하는 특단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이종환 교수)는 견해가 나왔다. 삼성전자가 종합반도체기업이다 보니, 파운드리사업부 고객사의 설계도가 시스템LSI사업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삼성 파운드리 분사설은 그동안 심심치 않게 나왔다.

파운드리 외에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조언이 적지 않았다.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를 하나로 합치는 개념을 갖고 탄생한 지능형 반도체인 프로세싱인메모리(PIM)가 대표적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PIM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회준 학회장은 “한국은 AI 반도체 역량이 준수한 편”이라며 “PIM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단장은 “현재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신할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중심으로 팹리스를 활성화하면 반도체 산업 전반이 나아질 것”이라며 “온디바이스 AI로 갈수록 NPU는 유망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목소리도 쏟아졌다. 김형준 단장은 “미국과 일본은 보조금을 주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사회 각계에서) 반발이 클 수 있어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보조금의 필요성은 있다”고 했다. 경희권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한국 기업들에게 저금리 대출을 전폭 지원하는 등 현금을 빠르게 투입하는 체제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환 교수는 아울러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우선해 보조금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서는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빨리 받는 게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외교전을 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