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명철 기자
2023.08.24 05:00:00
부동산 시장 침체, 개발업체·그림자금융 위기로 번져
외신들 “국영은행 시스템, ‘제2의 리먼’ 가능성 낮아”
침체 길어지면 숨은 리스크 우려…“디레버리징 필요”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경제 위기 우려는 최근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2020년부터 시작한 중국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렸고 소비·투자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도 발생했다.
중국 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이 위태해지면 2008년 금융위기를 부른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재현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견실한 기업으로 인정받던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채권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고 대형 자산운용사인 중즈그룹이 고객들에게 상품 현금 지급을 미루면서 중국 내 불안은 한층 커졌다.
부동산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중국은 1998년 주룽지 전 총리가 내수 부양책으로 주택 민영화를 시작하면서 부동산 황금기가 시작됐다.
2010년대 들어 국가 성장에 4분의 1 이상을 기여하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투기가 늘면서 부동산 규제 또한 도입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20년초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개발업체 현금 흐름이 중단되면서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자산·부채 비율 70% △순부채율 100% △단기 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 우위라는 ‘3대 레드라인’을 내놓으면서 고삐를 쥐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금융권의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또한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2일(현지시간) 골드만삭스 분석을 인용해 중국 은행 시스템은 94조위안(12조9000억달러·약 1경7000조원)의 지방 정부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동산 부문 익스포저가 약 58조위안(약 1경1000조원)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금융감독관리국에 따르면 부동산 부문 부실 대출 비율은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3.35%에서 2020년 1.4%까지 낮아졌지만 이후부터 공식 발표는 없는 상태다.
미국은 지난 2007년 대규모 수요자들에게 주택 모기지(담보대출)를 제공했다가 부실이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바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수십년’이라는 장기 침체의 터널을 지났다.
중국에서 금융위기가 촉발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특별한 시스템 때문이다. 중국은 4대 은행인 중국·공상·건설·농업은행이 모두 국유기업이며 사실상 대부분 은행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중국 센터의 조지 매그너스 연구원은 SCMP에 “당국은 국영 은행 시스템에서 부채를 이동하고 확장·가장 회계를 사용해 주요 은행이 실패하지 않고 소규모 은행을 개선 또는 합병할 수 있다”며 “(중국에서) 리먼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숨겨진 리스크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중국 GDP의 6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진 그림자 금융(Shadow Bank·비은행권에서 취급하는 금융 상품)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인 줄리안 에반스-프리처드는 SCMP에 “국유화는 중국 은행을 금융 시스템의 다른 문제로부터 보호한다”면서도 “더 큰 금융위기는 피하더라도 그림자 은행의 부실로 대출자의 신용 조건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즈그룹은 1조위안(약 183조5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 그림자 금융 기업 중 하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금융위 연쇄 부실은 공고한 중국 금융 시스템을 흔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대형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 장부를 정리하는(구조조정) 반면 중국 은행들은 가만히 앉아 대출만 연장할 수 있다”며 “중국의 이러한 흐름은 은행 시스템과 경제 회복을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정책에서 벗어나 리오프닝(경제 재개)를 선언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은 중국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은행 시스템 등 중국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투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중국이 리스크를 털어내기 위해선 국제적 신뢰를 얻을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링크드인을 통해 주룽지 전 총리가 국영은행의 부실 대출을 나누기 위해 4개의 국영 자산관리 회사를 설립하려했던 것을 언급하면 “1990년대 후반 주룽지가 설계한 것과 같은 종류의 대규모 부채 구조조정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SCMP는 레이 달리오의 ‘아름다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이론은 그동안 중국 고위 관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중국 금융 전문가인 프레이저 하우이는 SCMP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국지적인 은행 부실을 허용하되 국영은행이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매그너스 연구원도 “부동산 파동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일한 해결책은 정부, 은행, 주택 구매자 등 누군가에게 위기 비용을 분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