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美 등 10개국 대사 추방 명령

by김무연 기자
2021.10.24 08:45:31

자선사업가 오스만 카발라 석방 요구에 따른 보복
카발라, 터키 인권 단체에게 ‘인권 탄압 상징’으로 통해
獨 등 추방 대상국 외무부, 대응 방안 논의 중
G20, COP26 등 연달아 열려 외교적 부담 커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터키가 미국 등 10개 서방국가 대사의 추방을 명령했다. 쿠데타 혐의로 감금된 시민 운동가의 석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이유에서다. 곧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유엔(UN) 기후변화 정상회의 등이 열릴 예정인 상황에서 외교적 파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수감 중인 터키의 자선사업가 오스만 카발라(사진=AFP)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자선사업가 오스만 카발라의 석방을 요구한 서방 10개국 대사의 추방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10개국은 △미국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뉴질랜드 등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남서부 도시 에스키세히르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나는 우리 외무장관에게 필요한 명령을 내리고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라면서 “대사들은 터키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날엔 떠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에 군중들은 환호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들 10개국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카발라 사건에 대한 공정하고 신속한 해결 및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카발라는 지난 2013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2년 넘게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자선 사업가다.

2017년 석방된 카발라는 다시금 2016년 실패한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돼 지금까지 수감된 상태다. 그는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는 현재 터키 내 인권단체에게 반대파 탄압의 상징적 인물로 통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추방 명단에 포함된 10개국 대사 또한 자국에서 ‘살인자, 테러리스트’를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AFP)


다만, 추방이 실제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오는 30~31일 이탈리아에서 G20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데 이어 내달 1~2일엔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린다. 각국 정상이 참석하는 회담이 연달아 잡힌 만큼 대사 추방이란 강수에 따른 외교적 파장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터키 소식통을 인용, 아직 대사관에 추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노르웨이는 또한 자국 대사관이 터키 당국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터키가 외교적 파장을 이유로 경고에 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독일 외무부 또한 이번 추방 명단에 포함된 10개국의 외무부는 대응을 위해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추방 명단에는 유럽연합(EU) 소속 국가가 6개나 포함돼 있어 EU 차원의 대응이 나올 수도 있다. 데이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은 “대사 10명의 추방은 터키 정부의 권위주의적 경향의 신호”라며 “우리는 겁먹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유럽인권재판소 또한 카발라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다면서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한 바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5년 동안 수감된 친쿠르드족 성향의 인민민주당(HDP) 전(前) 대표인 셀라하틴 데미르타스의 경우에도 비슷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