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간 채권·채무인데`…양육비 지급 법개정 막는 편견들

by남궁민관 기자
2020.05.01 01:47: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④
"양육비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지"…현실 모르는 드라마
미지급자 형사처벌·면허정지, 관계부처 반발 걸림돌
개인간 문제로 치부해 정부도 적극 나서지 못해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내가 살게. 나 양육비 받잖아.”, “ 모자라면 더 보내 달라 그러지 뭐. 그런 건 군소리 없이 잘 보내주거든.”

지난 18일 이혼 가정을 소재로 한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 나온 대사 일부다. 사회적 문제인 양육비와 관련해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과 대사로 아동의 생존권을 보호하려는 이들의 공분을 샀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A씨는 “양육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더욱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준다”고 지적했고, 다른 이혼가정의 양육자 B씨는 “우리나라 양육비 산정 금액은 아이 양육비로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양육과 경제활동 양립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실을 진지하고 세밀하게 살펴 보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양육비 관련 시민단체 ‘양육미해결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발적 양육비 이행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아동학대에 이를 만큼 고통받는 상황이고 현행 법 제도 마저 실효성이 없어 아이들의 양육비는 확보되지 못 하고 있다.



미지급에 따른 처벌은 감치에 그치고 길고 긴 민사 소송 끝에 압류 결정을 받아내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나마도 재산을 빼돌리거나 월 급여를 최저 생계비 기준인 185만원으로 조정한다면 압류조차 불가능하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상대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행위는 중범죄로 형사 처벌 대상이다. 유럽에서는 양육비를 국가가 대신 지급하고 피양육자에게 회수하는 방식의 대지급제를 운영하고 있다.

형사 처벌 강화나 운전면허 정지·취소, 여권 발급 거부 및 출국 금지 등 제재를 강화하는 개정안이 10개 발의됐지만 20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폐기 수순을 앞두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 건 국회의원이 32명이나 되는 만큼 관련 법안 재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관계부처인 법무부와 경찰청의 안일한 태도도 걸림돌로 꼽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현재 법무부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형사처벌을 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운전면허 정지 또는 취소와 관련해서도 경찰청에서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위배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육비 미지급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 간 문제로 치부하는 안일한 인식도 문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양육비는 사인 간 채권·채무로 규정돼 있어 관계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라며 “최소한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상당한 효력을 갖춘 제재 조치부터 먼저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