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몽니가 기회"…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산업 '기지개'
by김상윤 기자
2020.01.27 00:00:00
[출구 안보이는 한일 경제전쟁]
정부, 세제·예산 전방위적 지원
국내기업 반도체 소재 생산 나서
해외기업 듀폰도 국내 공장 구축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일본이 찔끔찔끔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수출을 허가하고 있지만, 언제 또 규제를 할지 가늠할 수 없죠. 불확실성은 기업에 최악입니다.”
반도체 업체 한 관계자는 “더는 일본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비즈니스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탈(脫)일본화’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산업을 돌아보고 자체적인 소재·부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 (왼쪽부터)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관계자가 22일 인천시 염료생산업체인 경인양행에서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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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핵심 소재의 일본 의존도는 상당하다. 규제품목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이 일본산이었고,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도 40%가 넘는다. 일본이 해당 소재 수출을 아예 금지할 경우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은 ‘올스톱’이다. .
이에 정부는 지난해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예산, 세제, 금융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단기적으로는 수급의 어려움을 풀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1∼5년 내 국내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혁신형 연구개발(R&D)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인수·합병(M&A) 자금 지원, 수입 다변화 등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를 모두 동원하고 총 45조원에 이르는 예산·금융을 투입한다.
시장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반도체 핵심소재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생산시설 증설에 나섰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용 소재 기업인 동진쎄미켐은 올해 1분기 안으로 포토레지스트 생산 시설 증설에 착수할 계획이다. 동진쎄미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직전 단계인 ‘불화아르곤(ArF) 액침 포토레지스트’ 개발ㆍ생산에 성공했다. 산업부는 동진쎄미켐 공장 증설이 마무리돼 내년 초 정상가동되면 국내 포토레지스트 생산량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할 때 쓰는 핵심소재인 불화수소도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액체 불화수소로 일본 제품을 일부 대처했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체인 솔브레인은 불산액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고 램테크놀러지도 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을 양산하면서 폴더블 디스플레이에도 국산 소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투자를 늘리려는 해외기업도 나타났다. 글로벌 화학소재기업 듀폰은 지난 9일 천안에 포토레지스트 개발ㆍ생산시설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듀폰은 내년까지 약 325억원의 투자를 통해 국내에서 포토레지스트를 본격적으로 양산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긴 하지만, 일부 핵심 품목을중심으로 수입다변화 및 국내에서 공급 기반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의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안정적인 생태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