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 돼지병]②“'ASF'냐 '잔반대란'이냐”…답 없는 정부

by강신우 기자
2019.05.22 05:30:00

환경부 ‘시행령’ 미온책 비판 나와
“잔반 전면 금지해야 ASF 차단”
잔반대란에 ‘최소한’의 예방책만
‘잔반급여 금지法’ 처리도 미지수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 주요 전파 경로로 돼지 사육 시 ‘음식물폐기물(잔반) 급여’가 지목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이 너무 안이(安易)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스페인 등 유럽에서는 구제역·돼지열병(Classical Swine Fever·CSF) 발생 이후 유럽연합 규정에 따라 20여 년 전부터 잔반급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불법이 아니다. 음식물폐기물 대란 우려가 있어 가축 사료로 쓰이는 잔반을 일체 금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등에 따르면 ASF가 주변국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국내 ASF 발병 위험이 높아지자 최근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이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요청하면 잔반을 해당 가축의 먹이로 직접 생산해 급여(자가 잔반급여)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대한한돈협회에서는 이 같은 시행령에 대해서 ‘미온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자가 잔반급여만 금지했기 때문이다. 음식물폐기물 업체에서 가공한 잔반 급여는 허용하고 있다. 한돈협회 등에서는 지난해 8월 중국에서 ASF가 발생한 이후 당해 11월부터 음식물폐기물 업체에서 가공한 잔반을 포함, 잔반 급여 전면금지를 주장해왔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ASF 바이러스는 80도 이상에서 30분간 가열하면 죽지만 업체에서 가공한 잔반도 제대로 열처리를 안 하면 바이러스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잔반급여를 전면 금지해야한다”며 “잔반의 위험성은 물론 양축현장에 팽배한 위기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당장 ‘음식물폐기물 업체 간 담합’과 함께 돼지뿐만 아니라 개 등 다른 동물에게도 잔반급여를 금지하게 되면 ‘음식물폐기물 대란’이 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는 이미 2017년9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잔반을 동물에게 먹이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여권 관계자는 “환경부가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음식물폐기물’ 대란”이라며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가축 전염병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도 법 개정 등 나서야 할 부분이 있지만 환경부 소관인 ‘폐기물관리법’만 부각된 상황이다.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동물단체에선 환경부의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문제 제기를 하며 개 등 모든 동물의 잔반급여 금지를 촉구,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단체의 한 활동가는 “돼지 잔반급여 뿐만 아니라 개 농장에서도 잔반을 자가소비 명목으로 수거해 급여하고 있다”며 “모든 동물에 잔반 급여를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평균 음식물폐기물 배출량 1만5680t 중 매립, 소각 외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1만4388t이다. 이 중 20%인 2884t이 동물 먹이나 사료로 가공된다.

상황이 이러하자 몇몇 국회의원이 나서 일명 ‘잔반급여 전면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폐기물관리법’ 개정안과 같은 당 김현권 의원의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에는 음식물 배출자와 폐기물처리업자가 가축 중 돼지의 먹이로 잔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가축 전염병 우려가 있으면 폐기물관리법에 따른 음식물폐기물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만 이들 법안이 언제 처리될 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이후 국회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국회 일정이 잡히지 않아서다. 법안은 현재 소관위원회인 환경노동위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 아직 상정이 안 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