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새해 소망이 '퇴사'인 나라

by최은영 기자
2019.02.07 05:00:00

직장인 87% 퇴사 충동…''퇴준생'' 신조어까지
적성·희망에 안 맞는 일자리 뒤늦게 깨달은 탓
개인과 사회 모두에 큰 낭비…개인 적성 따져보고, 회사 문화 바꿔야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강원대 초빙교수]직장인 10명중 9명(87%, 올해 1월 사람인 설문조사)은 퇴사 충동을 느낀단다. 회사원이라면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충동을 현실화 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힘들게 구한 직장을 1년도 못 버티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28%(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신입사원 1년내 퇴사율)이고 심지어 2019년 새해 소망 키워드로 ‘퇴사’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퇴사를 소망한다니…. 회사 밖은 107만 명의 실업자와 17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로 아수라장인데 말이다. 참 이상한 현실이다.

이는 국가적 난제인 일자리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퇴사자 또한 새로운 구직자 군으로, 이들이 일자리 정책에 새로운 과제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유행어는 시대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퇴사 준비생을 가리키는 ‘퇴준생’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경쟁에 뒤지거나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를 하는 현상에서 이제는 회사에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내가 생각했던 직장이 아니라서, 혹은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꿈을 좇는 삶을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준생’이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종신고용에 대한 환상이 없이 자라난 지금의 ‘어른’들에게는 ‘직장’이 곧 ‘나’가 될 수 없기에 힘들게 취업 했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으러 다시 떠나겠다는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꿈을 좇아 회사를 나간다니 축하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사회에 진출하는 단계에서부터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 한다면 이러한 실패의 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시대의 숙제라며 그냥 놓아둘 일만은 아니다. 이것이 단순히 이직을 하거나 한 두 해 준비해서 창업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사회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늘 것이고,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는 숙련된 인재 공백으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퇴사하는 당사자에게는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거쳐 가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많은 미취업자들의 채용기회를 잃게 만들며 채용 경쟁률 또한 더욱 높이는 부작용까지 낳게 된다. 한마디로 사회적 고비용이 수반되는 서로 망하는 게임이다. 모두의 인식을 전환하여 ‘사회적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퇴사를 줄일 수 있을까?

먼저 일자리 로드맵이 필요하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명확하게 정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다양한 길’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로마에 가는 길이 다양하듯 우리의 ‘꿈’에 도달하는 길도 그렇다. 선 취업 후 진학, 경험 축적 후 전직,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경험 후 창업 등 그 어떤 길이라도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학교·일자리’라는 지금 당장의 목표를 향해 한 길로만 달려온 것이 구직을 어렵고 힘들게 만든 원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다양한 관점에서 상호 보완적 사회 정책이 요구되어진다.

첫째는 구직자 관점이다. 구직자가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탐색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회에서의 평가나 시선 때문에 무작정 ‘좋은 일자리’를 향해 남들과 똑같이 과도한 취업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제 직무에 요구되는 능력 대비 필요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인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자국민 오버스펙 비율 59.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하지 않는 스펙 쌓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치열한 취업경쟁 속에 ‘좋은 일자리’를 위해 노력해온 만큼 임금과 직무에 많은 기대를 걸지만 실제는 그에 미치지 못해 그제야 뒤늦게 구직자 본인의 적성이나 진로에 대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취업을 하던 창업을 하던 장고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을 쌓은 기간만 해도 족히 수년인데 진로 결정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선택지도 훨씬 다양해졌다.

둘째는 사회적 관점이다. 충분히 개인의 적성에 맞추어 사회에 진출 할 수 있도록 개인의 선택을 잘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 되어야한다. 목표 대학을 정하고 고등학교 3년간을 철저히 준비해도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는 없다. 실제로 교실에서는 본인의 적성, 향후 희망보다 내신과 수능성적을 토대로 이에 적합한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도록 한다. 대학입시도 그러한데 하물며 취업은 어떠할까?

이렇게 모두가 대기업, 공기업 등의 좋은 직장에 들어 갈수 없고, 아무리 좋은 기업에 간다고 한들 그 직장이 나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면 또다시 퇴사로 이어지고 만다. 스펙 쌓기에 쏟아 부은 시간에 내가 회사의 규모나 급여보다 중시하는 것을 파악했다면, 그리고 나에게 적합한 일자리에 지원했다면 퇴사라는 선택은 줄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 또한 사후 수습 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대학은 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을 넘어 졸업자의 평생직장을 찾아주고 ‘적성’과 ‘잘 할 수 있는 일’, ‘국가적으로 필요한 직무’의 인력을 훈련시키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한 계단 더 성숙되어야 한다.

수요처인 기업 관점을 본다면 수직적인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하고자 하는 업종과 직무에 따라 문화는 각기 색깔이 다르다. 독립적, 개인주의적인 ‘지금의 어른’들과 접목이 쉽지 않다. 기업의 문화란, 무조건 사원들의 요구에 맞출 수만은 없는 속성을 갖고 있기에 잘 절충해서 조정해 나가는 것이 새로운 성장과 영속적 발전을 약속하는 길이다.

기업은 운영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세계사적인 기술 전환의 시대가 열렸고 인재 전쟁은 더욱 격화할 것이다. 기업에 퇴사는 막대한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기술과 능력의 축적’을 잃어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선 ‘선별된 인력을 채용하는 정교한 시스템’의 지속적 보완 개발과 ‘근무 시에 발생하는 여건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분의 최적이 전체의 최적이 될 수 없듯이 각각의 상호 협력적, 전략적 보완만이 보다 나은 내일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