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민구 기자
2016.12.23 05:00:00
“정부에게 삥 뜯기고 청문회에서 욕먹으니 내가 이러려고 기업가가 됐나.”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은 차마 입밖으로 말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여의도 정객들이 큰 형이나 삼촌뻘되는 자신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책상을 치며 호통치고 비하하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을 법도 하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직원을 채용하고 글로벌 무대를 상대로 촌음을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들 대기업 총수에게 한국 정치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반(反)기업 정서로 무장한 이들 정객은 ‘나홀로 갈라파고스(고립지)’ 프레임에 함몰돼 터널 비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함정에 빠져 있다.
국내 대기업을 최순실 사태의 올가미에 빠뜨리게 만든 것은 결국 준조세다. 준조세는 엄밀하게 말하면 법에도 없는 세금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기부금과 성금이 준조세 성격을 띄다보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지난 한 해에만 걷힌 준조세가 18조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거의 갈취 수준이다. 기업을 ‘현금인출기’로 아는 나라에서 사업한 죄다.
우리나라처럼 기업과 정부간의 관계가 ‘죄수의 딜레마’로 고착된 나라도 많지 않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각종 인허가,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서슬 퍼런 칼자루를 휘두르는 데 이에 맞서 싸울 기업이 있을까.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배임죄 못지 않게 두려운 죄목이 ‘괘씸죄’다. 이를 알기 위해 유신시절까지 돌아갈 필요도 없다.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당시 정권에 돈을 적게 냈다가 괘씸죄로 1985년 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순실 일당의 이권개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것만 봐도 권력의 전횡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업총수로서는 정부로부터 찍히지 않기 위해 성금, 기부금 등 ‘보험’부터 들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한국 경제는 약 30년 사이 10배 이상 급성장하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 각종 명목으로 은근슬쩍 손을 내미는 ‘수금(收金)통치’의 후진적 관행은 달라진 게 없다.
이런 현실에서 대기업 총수를 불러다 호통치는 청문회를 백날 해봤자 정경유착의 고리는 좀처럼 끊을 수 없는게 우리의 슬플 자화상이다. 28년 전 “시류에 따라 편히 살려고 돈을 냈다” “기업이 권력 앞에서 왜 만용을 부리겠나”라고 술회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고백이 좀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는 것은 기자만의 착각일까.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의 사유화를 통해 국가시스템을 무력화시킨 전형적인 후진국형 범죄다. 정부 예산과 정책 집행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사적 관계에 좌우된다면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고 경제효율성을 떨어뜨릴게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신뢰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말했다. 신뢰가 노동이나 자본처럼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일궈내고 국민 삶의 질을 꾸준히 높이는 국가는 ‘신뢰’라는 자본이 풍부한 국가라고 역설했다.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정책결정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 시급해졌다. 공적 시스템과 정책 및 법 집행 신뢰도에 토대를 둔 사회적 자본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부패를 척결하고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기회에 ‘준조세 김영란법’을 도입해 이러한 취지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