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성장동력이라더니"…천연물신약 찬밥신세 위기
by천승현 기자
2015.08.05 02:55:00
천연물신약 8종 상반기 처방실적 전년비 14%↓
녹십자·동아에스티 등 신제품도 매출 하락세
감사원 특혜 지적에 보건당국 관리 강화 예고
업계 "글로벌 겨냥한 맞춤형 지원 정책 절실"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제약사들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했던 천연물신약이 찬밥신세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제약사들의 집중적인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감사원이 “보건당국이 천연물신약의 시장 진입에 특혜를 줬다”고 문제삼으면서 향후 까다로운 관리체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제약사들은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4일 의약품 조사 기관 유비스트 자료에 따르면 국내제약사들이 허가받은 천연물신약 8개 품목의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총 685억원으로 전년 동기 800억원보다 14.4% 감소했다. 천연물신약의 맏형 역할을 했던 동아에스티의 위염치료제 ‘스티렌’과 SK케미칼(006120)의 골관절염치료제 ‘조인스’는 전년대비 처방실적이 각각 23.5%, 29.8% 줄었다.
| 천연물신약 개발 현황 및 원외처방실적 추이(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유비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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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렌과 조인스는 각각 10년 이상 연간 수백억원 어치 팔리며 국산 천연물신약의 간판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후발주자들의 치열한 견제에 시장에서의 입지가 위축됐다. 제약사들이 최근 ‘제2의 스티렌’을 목표로 내놓은 천연물신약 제품들의 부진은 뜻밖이다.
녹십자(006280)가 2011년 내놓은 골관절염치료제 ‘신바로’는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이 38억원에 불과했다. 녹십자는 발매 당시 신바로를 연 매출 500억원대의 대형 제품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신바로는 녹십자가 자생한방병원이 오랫동안 사용해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추나약물’을 이용, 개발한 제품이다.
동아에스티가 2011년 말 발매한 자체개발 2호 천연물신약 ‘모티리톤’은 출시 3년만에 성장세가 꺾인 분위기다. 올 상반기 원외처방실적은 모티리톤은 94억원으로 전년대비 13.2% 감소했다. 모티리톤은 나팔꽃씨와 현호색의 덩이줄기에서 배출한 천연물질을 이용해 만들었다.
KT&G생명과학이 개발하고 영진약품(003520)이 판권을 보유 중인 아토피피부염치료제 ‘유토마’는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도 아직 발매되지 않았다. 원료 가격 문제 등을 이유로 아직 보험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아직 국산 천연물신약 중 해외시장에 진출한 제품은 전무한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천연물신약의 부진 요인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기존 약물 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진입하다보니 단기간내 매출 확대를 이끌기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골관절염치료제로 개발된 신바로와 레일라는 소염진통제 ‘쎄레브렉스’와의 비교 임상시험을 통해 비열등성을 입증했는데 국내에 판매 중인 소염진통제는 수백여 종에 달한다.
국내 의약품 시장의 침체도 천연물신약 제품들의 부진으로 꼽힌다. 최근 강화된 리베이트 규제로 국내제약사들의 판촉활동이 위축되면서 적극적으로 천연물신약을 알리지 못했다는 게 제약사들의 하소연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한의사들이 천연물신약의 처방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나 의료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처방 현장에서는 천연물신약을 외면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토로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 감사원이 정부의 천연물신약의 지원 정책을 문제삼으면서 자칫 개발 분위기가 꺾일 수 있다고 제약업계는 우려한다.
감사원은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사업 추진실태’를 통해 정부가 천연물신약에 지나친 특혜를 줬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3092억원의 정부예산이 천연물신약이 연구개발사업에 투자됐는데 아직까지 제품화로 연결된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사원은 기존에 허가받은 천연물신약의 승인 과정에서도 특혜가 제공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복지부는 천연물신약을 다른 신약에 비해 보험약가를 비싸게 책정했고, 식약처는 허가심사 기준이 불합리했다는 지적이다.
보건당국도 후속조치 마련에 나섰다. 복지부 관계자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천연물신약의 보험약가가 기준보다 높게 책정됐는지 검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식약처 역시 “천연물신약의 허가 기준과 사후관리 전반에 대해 개선 여부를 검토 중이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아직 합성신약도 성공한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의 지원으로 글로벌 천연물신약의 개발을 요구하는 것은 성급하다”면서 “천연물신약의 허가요건이 엄격해지면 개발 의지가 꺾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천연물신약 개발을 위해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천연물신약은 내수 시장에 초점을 맞추거나 기존 주력제품을 대체할 목표로 개발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출시 3년만에 연 매출 300억원대 제품으로 성장한 시네츄라는 안국약품의 종전 주력제품이었던 ‘푸로스판’의 후속제품으로 개발한 천연물신약이다. 푸로스판의 시장을 시네츄라가 대체하면서 급성장한 셈이다.
다만 최근 동아에스티(170900)와 영진약품이 미국 식품의약품(FDA)의 임상시험에 진입하면서 R&D 성과가 점차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천연물신약은 합성의약품의 부작용 문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제약업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구자들이나 기업들의 천연물신약 연구가 위축되면 국가적 손실이다”고 꼬집었다.
정 실장은 “ 허가 과정에서부터 유럽이나 미국 수준에 맞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등 개발 단계부터 글로벌시장을 겨냥한 관리 체계와 연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