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보증기금' 연내 설립 무산..시름 깊어진 해운업계

by한규란 기자
2013.09.04 06:00:00

금융위, 내년 상반기까지 기금 설립 여부 검토
"정부, 마땅한 금융지원 대책 없어" 업계 하소연

[이데일리 한규란 기자] 해운업계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해운보증기금의 연내 설립이 물건너갔다.

3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상반기까지 관계 부처 공동 연구 용역을 거쳐 해운보증기금 설립 여부를 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동안 국내 해운사들은 고사 위기에 처한 해운업을 살리기 위해 조속히 해운보증기금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결국 이 계획이 내년 이후로 멀어진 것이다.

한진해운의 1만TEU급 컨테이너선 한진 코리아호.
해운보증기금은 해운사가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때 보증을 서주는 방식으로 선사에 유동성을 제공, 해운업계의 ‘돈맥 경화’를 풀어 줄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혀왔다.

한국선주협회는 지난 7월 초 해운 불황기에 선박을 원활하게 확보하고 해운기업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기금을 설립해달라는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선주협회는 정부에 기금 설립을 위한 자본금을 지급하고 선박금융 전문기관 설립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선박금융 전문기관 설립 로드맵은 ▲해운보증기금을 부산에 설립해 보증업무에 주력하고 ▲선박금융공사를 발족해 대출업무를 추가하고 ▲해양금융공사로 확대해 해양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해운업계는 당초 올해 안에 정부가 기금 설립 여부를 결정하고 내년 상반기쯤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연내 설립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업계의 주름이 깊어졌다.

해운업계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1,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117930)과 현대상선(011200)은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3, 4위 해운사 STX팬오션(028670)과 대한해운(005880)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해운사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탓에 선박 제작을 주문하는 ‘신조선 발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올해 안에 갚아야 할 회사채만 수천 억원에 달해 자금을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 중소 해운사들은 고사 직전에 놓였고 대형 해운사들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교환사채(EB)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다른 국가 정부는 자국의 해운업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 금융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며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기대했던 정부의 지원까지 미뤄지면서 앞이 더욱 캄캄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덴마크 정부는 해운업체인 머스크에 62억달러의 금융 차입을 지원했고 중국 공상은행은 국영선사인 코스코에 150억달러를 신용 대출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