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피트니스 회원권을 둘러싼 소동
by이진우 기자
2012.04.19 06: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19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피트니스클럽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소란은 거래와 관련한 규정과 관행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을 때 어떤 혼란이 벌어지는 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사건은 간단하다. 20년전 600만원에 분양한 피트니스 회원권이 4000만원까지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호텔 측이 건물 재건축을 위해 피트니스센터를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이럴 경우 호텔이 회원들에게 얼마를 물어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호텔은 600만원받고 팔았으니 600만원을 내주겠다는 입장이고 회원들은 4000만원짜리가 호텔 사정으로 못쓰게 되는 꼴이니 4000만원을 내놓으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호텔 입장도 억울하긴 하다. 600만원이 4000만원으로 오르는 동안 호텔이 얻은 수익은 한푼도 없다. 회원권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거래차익을 거둔 회원들이 가져간 돈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는 이런 경우 룰이 있다. 주당 6000원에 공모한 주식이 20년 후 주당 4만원에 거래될 경우 회사에서 그 주식을 모두 거둬들이고 상장폐지를 시키려면 현재 거래 가격인 4만원에다 프리미엄을 조금 더 보탠 값에 공개매수를 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주당 6000원에 판 주식이 회사에다 물어보지도 않고 시장에서 제멋대로 4만원까지 올라버린 셈이지만 그게 규칙이고 룰이다. 그게 싫으면 애초에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이나 골프장 회원권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호텔이나 골프장은 회원권을 분양한 후에 그게 얼마에 어떻게 거래되건 간섭하지 않는다. 회원권 거래소라는 사설 업체들도 중간에서 거래만 중개할 뿐이다.
회원권에 붙은 프리미엄은 마치 가게의 권리금같은 것이어서 어느날 갑자기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권리금은 모두 날리게 되고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회원권이 거래될 때마다 명의 변경을 하기 위해 호텔이나 골프장에서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호텔과 회원들이 서로 명확한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만약 휘트니스클럽이나 골프장 문을 닫게 되면 얼마까지 보상해준다는 계약이다. 그 이상의 프리미엄은 회원이 리스크를 안고 지불하는 돈이라는 점을 서로 확인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새로 생긴 호텔이나 골프장, 콘도미니엄들이 회원권을 파는 것에만 신경을 써 왔고 정부도 회원권을 과도하게 팔지 못하게 막는데만 신경을 써 왔다. 새로 생기는 호텔이나 콘도는 많아도 낡아서 문을 닫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은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도나 규정의 공백을 찾아 사려깊게 메우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