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소득공제 `무용지물`..카드결제 기피 "탁상행정"
by황수연 기자
2011.09.15 06:20:00
상인들 "수수료 떼면 뭐가 남나" 카드처리 꺼려
카드단말기 보급 낮아..현금영수증 처리도 쉽지 않아
[이데일리 황수연 기자] "5000원, 6000원어치를 사면서 카드를 긁게 되면 남는 게 없다. 카드 긁자고 할 때가 가장 곤란하다" 지난 9일 오후 찾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남부재래시장의 한 과일가게 주인은 돈 대신 내민 신용카드를 보자마자 단번에 손사래를 쳤다.
남부재래시장에서 떡값을 신용카드로 계산하려던 주부 김모씨(40)는 "만원 이하는 카드 결제가 곤란하다고 해 부랴부랴 주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샀다"면서 "재래시장에서 신용카드 쓰면 혜택(세제혜택)을 더 많이 준다고 하는데 제대로 되겠냐"고 고개를 저었다.
| ▲ 지난 9일 안양 남부 재래시장에서 사람들이 추석 맞이 장을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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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북부 최대 재래시장인 경동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추석 장보기에 나섰던 윤모씨(67)씨. 그는 "2만원어치 과일을 샀는데 카드를 내밀자 주인이 덤부터 뺐다"면서 "주인이 `시장에 오면 당연히 현금으로 거래해야지, 수수료 빼면 몇 푼 남지도 않는데 카드로 긁으면 되겠느냐`라는 투로 면박을 주더라"라고 푸념했다.
기획재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내년부터 재래시장 사용된 신용·체크·현금 영수증에 대한 공제율을 30%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정작 재래시장에선 수수료 부담 등의 이유로 카드 결제를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각에선 소득공제 혜택 확대가 실효성이 낮은 대표적 탁상행정이란 지적도 일고 있다.
수도권 남부지역 최대 도소매 재래시장인 안양 남부시장의 경우 입점한 250여 상점 중 신용카드 단말기 시스템을 갖춘 상점은 30~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심지어 카드 단말기를 설치한 상점들도 1만원 가량의 소액 결제는 꺼리는 실정이다. 현재 재래시장 카드수수료율은 연매출 1억2000만원 이하는 1.6~1.8%, 1억2000만원 초과는 1.5~4.5%가 적용되고 있다. 안양 남부재래시장은 매출액을 감안할 때 3~3.8%의 수수료가 적용되는 상황이다.
매출이 적은 영세상점은 비교적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 받고 있지만 이윤을 감안하면 수수료 자체가 부담이고 매출이 큰 상점은 연매출 기준이 낮다보니 수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신용카드 결제를 기피하게 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봉필규 안양남부 재래시장 상인회 회장은 "몇 천원 짜리 물건을 팔면서 카드로 결제해주다보면 봉투값 등 각종 경비를 빼면 이윤이 남겠냐"라고 말했다.
봉 회장은 또 "시장 내 영세상점을 제외하고 규모가 좀 되는 상점들의 경우 카드 수수료 혜택을 받으려면 연간 매출 1억2000만원 이하여야 하는데, 대부분 상점들은 이 기준을 넘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니 카드를 안 받으려 한다. 공제혜택 확대는 현 시점에선 그야말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주요 대형 재래시장은 중소 기업청에 연매출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중기청은 현행 기준보다 3000만원 정도 오른 1억5000만원 이하 확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실을 감안할 때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현금영수증 처리에 대한 개선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래시장에서 현금을 사용한 경우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현금영수증 처리가 돼야 한다. 재래시장에선 신용 카드기를 통해 카드 결제와 현금영수증 처리가 동시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양 남부시장처럼 카드 결제기 보급이 낮은 상황에서 소비자가 현금을 사용한 뒤 영수증 처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인들의 의식 제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신용카드 결제나 현금영수증 발급이 활성화되면 상인들의 소득이 노출되고 이에 따른 세금 부담도 늘어 상인들이 이를 꺼리는 것"이라며 "상인들의 의식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