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E][글로벌레이팅]2010년 국제신평사 레이팅 액션

by김일문 기자
2010.11.02 11:03:00

"Different, but not Wrong"

마켓 인 | 이 기사는 11월 01일 11시 02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 인`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일문 기자] 글로벌 신평사들은 등급 평정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내는데 충실하다. 다소 독단적이고 거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신평사가 등급을 조정했다고 해서 똑같이 따라가지 않는다. 누군가 등급을 상향(혹은 하향)했더라도 그뿐이다. 다를(different)뿐 틀린(wrong)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신평사로서 그들만의 자부심이자 자신감, 어쩌면 존재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신평사들은 국가(정부) 신용등급 혹은 특정 기업의 크레딧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놓곤 한다. 우리나라 정부 신용등급 변동이 대표적인 예다.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경제 회복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지난 4월 정부 신용등급을 종전 `A2`에서 `A1`으로 13년만에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S&P는 외신 인터뷰와 방한 기자 간담회를 통해 북한 리스크가 계속되는 한 등급상향 계획은 없으며, 지난 2005년 7월 이후 이어져 온 국가신용등급 `A`를 유지할 것임을 내비쳤다. 6월에는 피치가 연례 협의차 방한해 등급 상향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왔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언급은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신평사들의 이같은 모습은 올해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시장에 던져진 국내 기업 관련 크레딧 이슈는 크게 2가지로 축약된다. 신한금융지주 내홍 사태에 대한 평판 악화와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이다. 글로벌 신평사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한 목소리로, 때로는 전혀 반대되는 시각으로 자신들의 분석을 쏟아냈다.


다양한 이슈 가운데 신한금융지주 내홍 사태는 글로벌 신평사들의 평가가 엇갈렸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신한은행의 신상훈 사장(전 행장) 고소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표면화된 이번 사태는 오래전부터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그룹을 이끌어 온 넘버 1(라응찬 회장)과 넘버2(신상훈 사장)의 훈훈했던 관계가 실상 후계구도를 둘러싼 정쟁과 암투로 점철된 사건이다. 글로벌 신평사들도 일제히 스페셜 코멘트를 내놨다. 30년에 가까운 업력과 국내 3위 금융지주회사로서 그 동안 쌓아온 명성, 평판에 금이 갈 것이라는 분석은 같았지만 실제 레이팅 액션을 보여준 곳은 피치 단 한 곳뿐이었다.

가장 먼저 코멘트를 전한 곳은 S&P였다. S&P는 사태가 일어났던 다음날인 9월3일 신상훈 사장의 횡령 및 배임혐의에 따른 고발사건이 당장 신한은행의 신용등급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S&P는“신 사장의 혐의와 관련된 950억원 대출금과 15억원의 횡령 금액이 신한은행의 재무 리스크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신한은행의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S&P는“대출금이 올해 2분기 기준 전체 대출채권의 0.1%에 불과하고, 신한은행이 이미 대출금의 상당 부분인 약72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P는 다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신한은행의 평판 훼손과 경영진 구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S&P는“신한은행의 평판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경영진 구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이번 사건으로 신한금융지주 경영진의 안정성이 심각히 훼손되면서 전략 및 영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신한은행의 등급이나 전망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열흘 뒤 무디스가 내놓은 자료 역시 S&P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무디스의 베아트리스 우 부사장은“최고경영자(CEO)와 회장, 행장 등에 대한 부적절한 주장들이 신한은행 평판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상황이 신한은행 수익성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그동안 흠없던 회사 명성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특히 기업 지배구조와 내부 제어 측면에선 이미 타격을 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려에 그친 다른 두 곳과 달리 피치는 실제로 등급 전망을 낮췄다. 평판 악화가 실질적으로 크레딧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서다. 피치는 지난 9월20일“신한은행 기업신용등급(A) 전망을 종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로 하향 조정한다”며“경영진간의 소송과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 등에 따른 잠재적인 재정 및 평판 악화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등급 전망 하향의 배경을 설명했다. 피치는“이번 사태로 인해 신한은행의 재무활동 등에 대한 단기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중기적으로는 은행 자체적인 신용도를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근시일 내에 그룹 내 최고 경영진들에 대한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지 여부도 두고봐야 한다”며“지배구조의 명백한 개선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 등급 전망을 다시 `안정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지만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등급 자체를 하향 조정할 수도 있다”며 수위를 높였다.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건에대한 평가도 신평사별로 엇갈렸다.



피치는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되며 `A-`인 포스코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피치는“두 기업이 사업상 부분적인 일치(overlap)를 보이며 잠재적인 시너지가 기대된다”며“일례로 포스코의 철강사업은 대우인터의 철강 거래와 원자재 운용에 수혜를 줄 수 있고, 대우인터내셔널의 강한 이머징 시장 판매망이 포스코의 철강 수출을 보강해 줄 것”으로 분석했다. 또“자원개발 사업 역시 두 기업이 상호 성장 기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뒤이어 나온 S&P 보고서도 피치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S&P는“포스코의 충분한 보유 현금 수준 및 낮은 레버리지, 우수한 현금 창출 능력을 감안했을 때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로 인해 포스코의 재정 상태가 다소 악화된다 할지라도 이로 인해 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S&P는 특히“대우인터내셔널이 무역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고 우수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및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는 포스코의 글로벌 전략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따른 부담보다는 향후 사업 성장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무디스의 판단은 두 곳과 달랐다. 무디스는 지난 8월30일 포스코 신용등급을 기존의 `A1`에서 `A2`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포스코의 등급이 내려간 것은 13년 만이다. 지난 5월 포스코가 대우인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줄곧 등급하향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무디스의 평가는 생각보다 냉혹했다. 무디스는 등급 전망 역시 `부정적(negative)`을 부여해 중기적으로 등급을 원상 복귀시킬 가능성보다는 추가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디스의 크리스 박 선임 애널리스트는“피인수회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의 영업구조와 재무 레버리지가 포스코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점을 반영해 등급을 조정했다”면서“이번 인수와 대규모 사업투자로 줄어드는 현금은 향후 수년간 포스코의 재무 레버리지를 높은 수준에 머물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대우인터내셔널의 자원개발 자산과 연계된 지정학적 위험 역시 양사의 다양한 시너지를 경감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부정적 전망을 감안할 때 새로 받은 A2 등급은 가까운 시일이나 중기적으로 상향되기 어렵다”며“다만 포스코가 재무부담을 A2 등급에 걸맞게 개선시킨다면 `안정적` 전망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개별 기업의 이슈 외에도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풀리지 않는 숙제로 자리잡고 있는 부동산 경기 침체 문제 역시 글로벌 신평사들이 눈여겨 보는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 신평사들은 한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은행권 리스크로 전이(轉移)되고 있다는 점, 이에 따른 은행들의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미세한 차이를 드러냈다. 올 3월 국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6곳의 등급 전망을 한 차례 상향 조정한 바 있는 S&P는 우려 속에서도 "아직은 괜찮다"는 반응을 나타낸 반면 무디스는 더 악화될 경우 실제 은행들의 등급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S&P는 지난 8월 26일 `한국 은행산업 신용 전망`을 통해 "올 2분기중 부동산 PF대출 부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하반기와 내년 중 추가적인 대손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올해는 물론 내년 상반기까지 은행들의 이익에 다소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S&P는 다만 "은행에 대한 다양한 부정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은행들의 자본구조가 강화됐고, 충당금 설정 전 이익이 안정적인 만큼 한국 은행들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며 "향후 1~2년내 등급이 조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본구조 강화 ▲견고한 경제전망 ▲은행수익의 회복 등을 국내 은행들의 긍정적 요소로 꼽았다.

무디스도 현재 부동산 경기 침체에 대한 인식과 은행권에 미칠 파급 효과 등에 대한 분석은 S&P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의 강도와 향후 전망은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무디스는 8월30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주택경기가 과잉공급으로 인해 장기 침체에 직면할 것"이라며 "향후 은행들의 실적은 부실채무자의 양과 질·대손충당금·충당금적립전 이익 규모 혹은 기본자본 등에 따라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는 특히 국민은행과 농협, 우리은행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PF 부실화 부담이 가장 큰 곳이라고 지목했다. 무디스는 이들이 6월말 현재 각각 약 8조~9조3000억원의 PF 대출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며 우려의 수위를 높였다.

무디스는 또 9월에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주택시장의 침체가 한국 은행들의 이익에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자체적인 시나리오 분석상 대부분의 은행 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상황이 심각해져 은행들이 손실을 흡수해 자본이 훼손될 경우 재무건전성등급(BFSRs) 하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실제 등급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