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5.11.07 07:55:53
[조선일보 제공] 끼니를 이을 돈이 없어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장사를 시작한 중국 광둥(廣東)성의 시골 소년.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5년, 그는 중국 대륙 최고 재벌의 자리에 올랐다.
중국의 최대 가전유통 업체인 궈메이(國美)의 황광위(黃光裕·36) 회장. 그는 영국 회계사 출신인 후룬(胡潤·영국명 루퍼드 후거월프) 연구소가 지난 10월 발표한 중국 부호 순위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황 회장의 재산은 140억위안(약 1조8000억원). 황 회장은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에서 이달 3일 발표한 중국 부호 리스트에서는 4위에 올랐다. 두 곳의 주식평가 기준이 약간 달라 순위에 차이가 나지만, 그의 재산이 1조원을 훨씬 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돈의 길목을 잡는 탁월한 감각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 경제의 변화 와중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응용했다. 이 때문에 얻은 별명이 `중국의 샘월튼`(세계 최대 할인점 월마트 창업자).
1985년 가정 형편으로 학교를 그만 둔 그는 네 살 위 형과 함께 4000위안(약 52만원)을 들고 내몽골로 가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이듬해 베이징(北京)으로 자리를 옮겨 가전 제품을 팔기 시작해 1987년 궈메이를 설립했다.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유통 비용을 줄여 싼값에 제품을 확보, 저렴한 가격에 파는 박리다매 방식으로 엄청난 종자돈을 마련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고 유통구조마저 갖춰져 있지 않던 1980년대 중반, 판매자 입장에서는 물건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는 환경을 잘 활용한 셈이다.
황 회장은 제조업체로부터 ‘가격 킬러’라는 비난을 들을 만큼 무자비할 정도로 공급업체에 가격 인하 압력을 가했다. 또 각종 마케팅 비용을 제조업체에 전가하는 일도 잦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우고 부동산업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장사하는 사람은 영역에 한계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6월 자신이 세운 홍콩 상장사 펑룬(鵬潤) 투자사를 `껍데기 회사`로 이용, 펑룬이 궈메이를 인수해 합병하는 방식으로 궈메이를 홍콩 증시에 우회 등록시키면서 회사의 가치를 높였다.
황 회장은 인터뷰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어려운 순간에도 만두 사먹을 돈도 없었을 때를 회상하며 인내심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2008년까지 매출을 1200억위안(약 16조원)까지 끌어올려, 세계 500대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