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홍기 기자
2000.03.22 08:30:52
21일 오후 2시15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회의결과가 발표됐다. “단기금리를 0.25%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인플레에 대한 경고 성격의 발표가 뒤따랐다.
뉴욕 증시에 FRB 결정 내용이 전파되자마자 각종 지수가 급격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약세를 면치 못하던 나스닥 지수도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가가 오를만하면 끌어내린다고 해서 ‘악당(big bad)’으로 불리는 FRB의 위력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악당 두목’인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의 ‘심술’도 약효가 떨어진 것일까?
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금리를 올렸음에도 주가가 오른 것은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단기금리가 1994년 이후 최고라고 해도 내용이 내용인 만큼 시장에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셈이다. 밀러 타박의 수석 채권시장 전략가인 토니 크레센치는 “경제에 대한 FRB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2월과 같다”고 말했다. 페더레이티드 인베스터스의 수석 투자가인 토머스 매든은 “FRB가 장난을 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5월16일에는 FRB가 또 한차례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뉴욕 증시는 흔히 말해 3박자가 들어맞은 날이었다. 3개 지수는 개장직후에 약세 출발했지만 이것을 장 초반에 끌어올린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이었다. 다우지수의 상승 기조를 계속 이어주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500 지수를 사상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GE는 전 세계의 경기 회복으로 수익이 당초 예상보다 나을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뒤는 “담배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 아니다”라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필립 모리스를 비롯한 담배회사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뒤를 FRB 발표가 뒷받침한 셈. 유럽연합 특허사무소의 결정으로 생명공학주가 약세를 보였지만 나머지는 모두 상승세를 나타냈다.
활기찬 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뉴욕 증시의 거래대금은 15조78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거래액을 나타내는 윌셔 5000 지수는 2.1% 올랐다. 그러나 거래물량은 증권거래소(NYSE) 11억주, 나스닥 16억주로 1월, 2월에 비해서는 적었다.
전 세계적 관심사인 반도체 주가는 혼조 양상을 보였다. 연일 신고점을 찍고 있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밀렸지만, ‘체이스 H&Q’가 목표 주가를 175달러라고 발표한 인텔은 또 다시 올랐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AMD도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반도체가 혼조 양상을 보인 것처럼 컴퓨터 관련 주가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다. IBM과 델 컴퓨터, 컴팩은 올랐지만 휴렛 패커드는 떨어졌다. 그래도 두 종목 모두 강세를 보이기는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러클, 시스코 시스템스, 노텔 네트워크스, 퀄컴, 모토로라 등도 모두 상승세를 탔다. 아마존, 야후, AOL, e베이, 더블클릭 등도 대부분이 10%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네트워킹, 통신 칩, 인터넷 등 기술주의 대표주자들에 대거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베르크샤이어 포커스’의 자산관리 매니저인 말콤 포브스는 “투자자들이 시장의 리더에 고착해야만 할 것 같은 시기”라고 말했다. 아멕스 인터넷 지수는 3.1% 올랐으며, 골드만 삭스 인터넷 지수도 3.5% 상승했다. 또 S&P 주요 지역은행 지수도 5.2% 상승했다.
이날도 생명공학주는 힘을 쓰지 못했다. 각종 질병에 대한 항생제를 만드는 프로틴 디자인 랩의 특허신청이 유럽연합 특허사무소로부터 거절당한 것이 컸다. 프로틴 디자인 랩은 이날도 폭락사태를 면치 못했으며, 여타 사이론, 바이오겐도 하락했다. 그러나 암겐과 이뮤넥스는 상승했다. 나스닥 생명공학 지수에 포함된 203개 주식중 132개는 떨어지고 62개만 올랐다. 아멕스 생명공학 지수는 2.3% 하락했다. 나스닥 생명공학 지수는 1.3% 올랐다. 대표주자격인 암겐과 이뮤넥스 덕분이었다.
다우지수가 또 다시 상승한 것을 놓고 가치주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보다 확실해졌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워버그 딜론 리드의 빌 슈나이더는 “구경제 기업들로의 중심 이동은 현실”이라며 “가치주가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술주 대표주자들의 상승에서 보듯 아직도 대표주자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