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 경찰, 이젠 수사 지휘자로…"혼자선 못 하죠"[경찰人]

by이영민 기자
2023.09.18 05:36:00

제4회 책임수사관으로 뽑힌 20년차 형사
형사과·수사과 넘나들며 도가니 사건 해결
각 부서의 전문성 잇는 징검다리 리더 되고파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봐야 할 때도 있어요. 부서들을 하나의 숲으로 연결하는 사람, 그게 책임수사관의 역할이죠.”

김세욱 광주광역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경위(49)가 책임수사관으로 선발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김세욱 광주광역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경위가 1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책임수사관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했다. 경찰은 2020년 수사관들이 수사역량을 높이는 데 매진할 수 있도록 역량에 따라 자격등급을 부여하는 ‘수사관 자격관리제도’를 마련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급인 책임수사관은 시·도경찰청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지고 수사를 이끈다. 부서별 칸막이를 뛰어넘어 수사를 지휘하는 수사관들의 리더인 셈이다.

광주경찰청 수사과에 몸담은 김 경위가 형사과 책임수사관으로 선발된 배경에는 그의 남다른 이력이 있다. 올해로 20년 차 베테랑 형사인 그는 형사과와 수사과를 넘나들면서 영화 ‘도가니’로 알려진 인화학교 사건부터 2021년 학동 붕괴참사 리베이트 사건까지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김 경위는 “이 사건들을 챙기면서 여러 부서와 공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책임수사관이 되면 형사과와 수사과의 협력을 더 이끌 수 있을 것 같아 이끌렸다”고 책임수사관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6년 전 맡은 인화학교 사건은 김 경위가 협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계기였다. 광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의 설립자와 학교 관련자들이 2000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폭력은 5년 넘게 은폐됐다. 피해자들은 장애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웠고, 학교법인은 친인척끼리 운영돼 내부 정보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4달 동안 사건을 수사해 범인들을 붙잡았다.



김 경위는 “제가 혼자서 해결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새로운 목격자를 찾고 피의자를 조사해서 거짓말을 발견한 건 형사과의 집요한 현장수사 덕분이었고, 수사과는 이렇게 찾은 법인 비서의 연락망과 돈의 흐름을 분석해 그곳에서 실제로 일한 사람들과 법인 운영자를 찾았다”며 “이때 협업할 기회가 늘면 사건의 실체를 더 빨리 포착할 수 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앞으로도 지역과 부서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김 경위는 “대형사건도 중요하지만 사기나 횡령처럼 여러 피해자를 낳는 민생침해범죄는 한 가정이 무너질 만큼 개인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며 “각 지역에 분산된 유사 사건을 병합해서 범죄의 구조석 실체를 밝히고, 피해 회복까지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에 선발된 제4회 책임수사관은 김 경위를 포함해 총 25명이다. 이들은 수사·형사·사이버 3개 분야에서 선발됐으며 수사기록을 토대로 법률검토, 지휘역량 등을 평가하는 서술형 시험과 수사역량·청렴성 등을 심사하는 자격 심사를 거쳤다. 이번에 뽑힌 책임수사관 중 경정은 7명, 경감은 7명, 경위는 11명이다. 경찰청과 시·도청 소속이 11명, 경찰서 소속이 14명이다. 이들은 시·도청의 직접수사부서와 경찰서 수사부서의 주요 보직에 우선 배치돼 수사경찰 인사와의 연계를 강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