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 퇴직연금시장, 치킨게임 시작됐다

by정두리 기자
2022.12.08 05:00:00

퇴직연금 시장에도 금리경쟁 가속화
금융권, 만기 이후 재갱신 여부 촉각
50조 재갱신 자금 대거 이동 가능성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데일리 정두리 전선형 기자] 중소형 보험사인 A사의 퇴직연금 사업부는 최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A보험사 퇴직연금 상품 금리가 경쟁사들보다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면서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사의 DB(확정급여)형 상품 금리는 4%대 수준. 이는 은행들의 정기예금 상품보다 낮다. 회사는 만약 자금이 일시에 빠질 경우 최소 5000억원에서 1조원 사이의 유동성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4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서 연말 50조원 규모의 ‘머니무브’(자금이동)가 일어나고 있다. 예적금과 마찬가지로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금리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 재갱신에 실패한 금융사의 경우 자칫 퇴직연금시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다급한 일부 금융사는 금리를 8%까지 올리면서 금융당국에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역마진 우려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퇴직연금 DB형 적립금 규모는 약 167조1000억원이다. 은행이 68조9000억원, 생명보험사가 50조7000억원, 증권사가 36조1000억원, 손해보험사는 11조4000억원을 가지고 있다.



통상 DB형 퇴직연금의 경우 매년 12월에 상품 만기가 찾아오는데, 이후 새 상품을 찾아 나서는 경향을 띤다. 금융업계에서는 연말이 되면 DB형 적립금 중 약 30% 수준의 자금이 재갱신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단순 계산하면 약 50조원 규모다. 업권별로 △은행 20조6900억원 △생보사 15조2100억원 △증권사 10조8300억원 △손보사 3조4200억원의 자금이 대거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형 보험사나 안정성이 낮다고 평가받는 증권사의 경우 경쟁에 밀리면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 금융당국이 90개 퇴직연금 사업자(비사업자 포함)에게 12월부터 상품 금리 공시를 하도록 했지만, 과열경쟁을 막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가 가파르게 뛰면서 시중 자금이 특정 금융기관, 특히 은행쪽으로 많이 몰려 퇴직연금 자금 유치도 상당히 치열해질 전망”이라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수익률은 전반전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만, 중소 금융사는 역마진 발생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