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후 신흥국 성장엔진 식는다…`세계경제의 일본화` 우려

by이윤화 기자
2022.03.20 08:32:15

코로나19 이후 신흥국 경제 성장기여도 70→60% 내외
재정적자에 민간부채 심각, 인구 고령화 문제까지 고착
세계 경제 뒷받침하던 중국 경제 성장세도 둔화된 모습
신흥국 장기 저성장땐 세계경제도 2~3%대 성장 불가피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신흥국 경제가 이전의 강한 성장 회복에 어려움을 보이면서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2~3%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성장세가 고착화할 위험이 커졌단 분석이 나왔다. 전 세계가 장기 저성장에 빠진 일본화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단 의미다.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들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통제된 구역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18일 국제금융센터 황유선 책임연구원, 안남기 종합분석실장이 작성한 보고서 ‘신흥국 성장동력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신흥국이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빠진다면 세계 경제도 2~3%대의 낮은 성장률이 이어질 수 있단 전망이 나왔다.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 둔화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장기화 등이 신흥국 경기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여기에 선진국들의 통화긴축 정책까지 진행되면서 신흥국으로 흘러 갈 자금 역시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그동안 전 세계 경제성장 흐름을 이끌던 신흥국의 세계경제 성장기여도는 낮아지고 있다. 중국·인도가 폭풍 성장하며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가 시장을 주름잡던 2000년대엔 신흥국의 전 세계 경제 성장 기여도가 70%를 웃돌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60% 내외로 급락했다. 2010~2014년까지 2010년대 초반엔 무려 기여도가 85%까지 오른 시기도 있었는데, 그 당시와 비교하면 20%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의 신흥국과 선진국 경제성장률 격차 역시 점점 좁혀지고 있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격차는 2010년대 초반 4%포인트 안팎에서 팬데믹 2년이 지난 올해 0.6%포인트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금센터가 향후 엔데믹(풍토병화) 선언 이후에도 신흥국 경제가 과거처럼 높은 성장을 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팬데믹 기간 중 굳어진 구조적 취약성, 신흥국 경제를 이끌던 중국의 성장 둔화,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성장 동력 약화가 근거다.



자료=국제금융센터


황유선 연구원은 신흥국이 팬데믹 기간 동안 막대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확대로 위기 이후 나타난 부작용이 이어지는 ‘상흔 효과’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신흥국의 GDP대비 재정적자는 지난 2019년 4.6%에서 2020년 9.3%로 급증했다. 지난해엔 5%대로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정부부채 역시 같은 기간 54%에서 63%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는 정부가 추가 경기침체에 대응할 여력이 그만큼 제한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 재정 약화뿐 아니라 신흥국의 가계와 기업들의 부채 역시 급증하면서 민간 부문의 건전성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경제성장세 둔화 역시 전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부동산 그룹인 헝다그룹 사태로 인한 부동산 부문의 디레버리징 지속, 전력난, 고강도 방역정책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공산당의 공동부유 정책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점도 경기 하방 요인으로 지적된다. 호주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2030년까지 연간 3%, 2050년까지는 2~3%로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이 전세계 총수출 중 14.7%, 총수입 중 11.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세계 2위 수입국인 만큼 기조적인 경제 둔화 흐름이 다른 신흥국으로 미칠 영향도 크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전체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5% 내외로 높은 편이고, 칠레나 브라질 같은 자원 수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비중은 30%를 웃돈다. 중국 경제가 휘청하면 신흥국들의 경제 전반이 휘청할 수 있는 이유다.

단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신흥국의 인구 구조도 점차 고령화 하면서 장기적 잠재성장률 하락에 직면했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향후 50년 이내에 고용률의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이며, 특히 중국의 경제활동 인구는 2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론된다. 신흥국의 인구 구조 문제로 인해 지난 2014년 4.8%를 기록한 경제성장률이 3.1%로 둔화할 가능성도 나온다.

황 연구원은 “지난 수십년간 글로벌 투자 자금이 신흥국에 꾸준히 유입된 것은 고성장에 따른 수익을 얻기 위함이었으나, 선진국과 비슷한 성장 기조로 둔화한다면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서 “신흥국이 장기 저성장에 빠질 경우 금리, 물가 이외 기대수익률도 낮은 수준이 만성화 되어 세계 경제 전반이 일본화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