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해우소] "폭행 견뎌내는 파리목숨" 갑질에 우는 근로자들
by황효원 기자
2020.05.17 00:18:58
반복되는 경비원 상대 폭언·폭행…처벌은 ''솜방망이''
"공통주택관리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은 조항 강화해야"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이른바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대중으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상사로부터 막말과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뎌야 하고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심화하면서 기업경영난이 심화하자 고용유지를 무기로 한 직장갑질까지 더해져 직장인들의 하루가 고되기만 하다.
최근 TV프로그램에서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라떼는(나 때는)말이야”는 누군가에게는 웃어넘기지 못할 말일 수 있다. 이데일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직장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공인노무사에게 노동관련법에 저촉되는지 들어봤다.
|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주민 괴롭힘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최희석 경비원의 유족들이 노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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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떼 같은 동생이…그렇게 됐습니다. 쉽게 죽을 사람도 아니고 겁도 많았는데”
아파트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던 한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가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하며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갑(甲)의 횡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지난달 21일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평행주차된 입주민 A씨 차량을 밀어 옮기다가 갈등이 시작됐다. 이후 A씨는 최씨를 상대로 여러 차례 폭언과 폭행을 가하며 갑질을 이어갔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입주민의 갑질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들 수 있다.
대부분 경비 노동자는 입주민회의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어 경비원을 간접 고용하거나 직접 고용을 체결하는 방식이 많다. 이때문에 아파트 입주민이나 용역업체와 같은 사용자측의 갑질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구조다. 입주민회의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할 경우 경비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해고될 경우 근로기준법 상의 고용안정장치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에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경비원 노동자가 폭언, 폭행 등 피해를 당했을 때 사업주에게 업무중단 등을 요청할 순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1항에 따라 고객의 폭언,폭행 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령이 정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나이가 많아 신고하기 쉽지 않고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아 문제가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직장갑질119는 공통주택관리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은 조항을 넣어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근로자의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하고 부당한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있었지만 처벌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두성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실질적 권한이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용역업체와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공동주택관리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직장인 삶 개선을 위해 제시한 대선 공약 70개 중 50개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코로나19를 맞아 서슬퍼런 칼바람이 해고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등 직장갑질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위축이 심화하면서 70%가 넘는 직장인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위기상태에 놓여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부당해고, 임금체불을 겪는 직장인들이 다소 늘어났고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경험한 비율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높았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A씨는 “수습기간이 한참 지났고 1년째 재직 중인 정규직 사원인데 업무상 미흡·평균보다 업무능력이 많이 뒤쳐진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이는 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사원 B씨는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워져 무급 휴직을 강요해 한 달간 휴직했는데 연이어 (휴직을) 강요하고 있다”며 “휴직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퇴사를 권고받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무급휴직이 퇴사로 이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회사의 권고대로 퇴사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일까?
조은혜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권고사직은 말 그대로 회사가 권고를 한 것에 불과하다”며 “회사의 퇴직 권고를 노동자가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의 종료를 통보했다면 부당해고에 해당돼 근로기준법상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업무상 미흡, 업무능력 미달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지는 사업장의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관련 규정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노무사는 “무급휴직은 개별근로자의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없으므로 거부 시 사용자의 귀책사유”라며 “평균 임금 70% 이상의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