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록의 미식로드] 대나무 그물로 잡은 멸치, 쫀득한 식감이 일품일세
by강경록 기자
2019.05.17 05:00:00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남 남해. 한때는 섬이었던 곳이다. 1973년 남해대교가 놓인 후 섬은 육지가 됐다. 지금은 하동과 남해를 잇는 남해대교가, 사천·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이어져 있다. 그나마 연륙교가 이어진 덕분에 남해는 섬에서 벗어났지만 쉽게 찾기에는 여전히 먼 곳이다.
멀고 먼 길을 돌아 남해를 찾은 이유는 ‘죽방렴’ 때문이다. ‘죽방’(竹防)은 대나무로 만든 둑이라는 뜻. 삼동면과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 주변 지족해협 바다 한가운데에는 부채 모양으로 촘촘히 박아놓은 참나무 말뚝이 바로 죽방렴이다. 남해에서는 이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는다. ‘대나무 어살’이라고도 부르는데, 수심이 얕은 개펄에 설치하는 고정형 그물이라고 보면 된다.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후기에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추청하고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세며 수심 얕은 갯벌에 참나무 말뚝을 V자로 박고 대나무로 그물을 엮는다. V자 끝 모서리 부분에 임통이 있는데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힌다. 멸치 입장에서 본다면 들어갈 때는 자유지만 나갈 방법은 없어 꼼짝없이 갇히는 셈이다.
지족해협은 예로부터 물살이 세기로 유명했다. 이곳 멸치들이 탄력성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이유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흐물거리는 생선보다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생선이 더 맛있지 않았을까. 거센 물살에 단련된 쫀득한 멸치들을 살아있는 채 뜰채로 곱게 떠서 잡아 올렸으니 그 맛 오죽 달았을까.
사실 죽방렴으로 멸치만 잡는 것은 아니다. 멸치는 물론 갈치나 학꽁치, 도다리 등 남해를 유영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죽방렴에 갇힌다. 그중 멸치수가 월등해 ‘죽방멸치’란 이름을 차지했다. 죽방렴으로 다른 생선이 잡혔더라면, 아마도 다른 이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생선보다 상대적으로 몸체가 작은멸치를 상처없이 잡아내기 어려운 것도 죽방멸치가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한 몫했다. 그물로 잡는 멸치는 비늘이나 몸체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해 멸치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지족해협을 품은 삼동면이나 미조면으로 가야 한다. 유명한 멸치전문점들이 대부분 여기에 있다. 모두 남해읍에서 제법 먼 거리다. 멸치요리는 크게 멸치회와 멸치쌈밥, 멸치구이 등으로 맛볼 수 있다. 내장을 제거해 미나리, 양파 등 야채를 더해 고추장 양념장으로 무쳐낸 멸치회는 새콤달콤함 맛이 으뜸이다. 막걸리 식초에 절여낸 덕분에 비린내도 걱정할 필요없다. 매년 봄이면 가장 맛 좋은 멸치회를 맛볼 수 있다. 여름까지도 멸치를 잡지만 6월이 지나가면 산란을 준비하느라 멸치뼈가 억세진다. 양념해 나온 멸치회는 그냥 맛보아도 좋지만 남해 마늘을 곁들이면 더 말끔하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