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좁혀진 장·단기 금리差…"채권시장의 경기침체 신호"(종합)

by김정남 기자
2018.08.21 05:00:00

일자리 쇼크發 영향 반영
고용 부진→소득 감소→소비 둔화
→생산 감소→고용 둔화 '악순환'
국고채 10년물 금리 10개월 만에 최저
美 금리보다 6개월 넘게 더 낮아
수익률곡선 평탄화도 갈수록 심화

올해 이후 우리나라의 국고채 10년물 금리와 미국의 국채 10년물 금리의 추이다. 연초만 해도 국고채 금리가 더 높았으나, 2월초 역전되더니 갈수록 그 폭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국내 경기의 둔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금리는 쉽게 말해 ‘돈의 값’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시장에서도 금리는 경제 상황에 민감한 지표로 꼽힌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채권시장의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미래의 경제 기대감을 반영하는 장기시장금리가 확 낮아지는 ‘이상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금리와 비교해도 6개월 넘게 더 낮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채권시장이 보내는 경기 침체의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20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서울채권시장에서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2.4bp(1bp=0.01%포인트) 하락한(채권가격 상승) 2.407%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18일(2.392%) 이후 10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대표적인 장기시장금리인 10년물 금리는 올해 한때 2.814%(5월15일)까지 올랐지만, 이내 하향세로 전환했다.

만기가 10년 이상인 장기국채의 금리는 경기와 물가 전반의 기대에 영향을 받는다. 장기시장금리가 내리는 건 우리 경제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를 우려한 시장 참가자들이 안전자산인 국채를 매수하면서 가격이 올랐다는 얘기다.

고용 쇼크가 결정적이었다. 일자리 부진은 소득 감소→소비 둔화→생산 감소→고용 둔화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고, 그 우려는 그대로 금리에 반영됐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신규 고용을 감안하면 정부의 올해 고용 목표치인 월평균 18만명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금리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건 바다 건너 미국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채권시장에서 국채 10년물 금리는 2.8614%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40bp 이상 높다. 두 나라의 장기금리는 지난 2월 초부터 반 년 넘게 역전돼 있다. 국채 금리는 채권 발행 국가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있지 않는 한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이자수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미국 중 어느 나라가 더 안전할까. 미국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더 위험한’ 우리나라 국채를 10년간 들고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수익이 미국보다 오히려 더 작다. 시장이 바라보는 국내 경기 전망이 심상치 않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장기금리는 미래의 경기 상황을 종합한 지표”라며 “미국 경제는 계속 좋아지는 반면, 우리 경제는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이상 장기물 금리 수준이 잠재성장률(2.8~2.9% 추정)을 한참 밑도는 것도 그 방증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20년물 이상 초장기물 금리는 2.3%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자 단기금리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에 민감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날 1.985%까지 떨어졌다. 이 역시 지난해 10월18일(1.935%) 이후 가장 낮다. 경기가 꺾이니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도 낮아지고 있다. 사실상 연내 동결론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한은이 올해 안에 인상에 나설 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단기금리 역시 미국과 다른 기류다. 미국채 2년물 금리는 연초만 해도 2%가 채 안 됐지만, 현재(17일 기준 2.6163%) 2.6%를 훌쩍 넘었다.

최근 채권수익률곡선(일드커브)이 ‘눕는’ 것도 경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일드커브는 만기 기간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수익률의 변동을 나타낸다. 장단기 금리 차이가 작아지면 곡선은 편평한 형태(커브 플래트닝)를 띤다.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게 자연스러운데, 그 차이가 작아진다는 것은 침체의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반대의 경우 가파른 형태(커브 스티프닝)를 보인다.

이날 장기물인 국고채 10년물과 단기물인 국고채 3년의 금리 격차는 42.2bp로 전날(43.4bp) 대비 1.2bp 줄었다. 지난달 2일(40.7bp) 이후 거의 두 달 만의 최저치다. 30bp대까지 내렸던 연초를 제외하면 연중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단기금리 하락 폭에 비해 장기금리 하락 폭이 큰 여파다. 커브 플래트닝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채권시장 한 인사는 “초장기물 국고채의 공급이 부족한 수급상 문제로 금리가 낮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일드커브가 지나치게 편평해진 것은 경기 둔화 전망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