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의 반격]①덩치 큰 오프라인이 아마존과 싸우는 방법
by안승찬 기자
2017.09.04 05:00:00
월마트 “아마존보다 무조건 더 싸게” 공격적 가격 전략
방대한 오프라인 네트워크는 오히려 장점..물류비용 낮춰
월마트 온라인 판매 60%씩 급성장..“시장 주도권 바뀔 것”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요즘 월마트 온라인 들어가봤어요? 정말 싸던데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미국인 학부모 스텔라는 최근 월마트 웹사이트에서 쇼핑하는 일이 부쩍 들었다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온라인 쇼핑은 아마존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월마트하고 가격을 비교해서 구매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대명사인 월마트가 달라졌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시장은 아마존의 세상이다.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 웹사이트 방문자는 1억8000만명이다. 2위인 이베이와 3위인 월마트의 방문자 수를 다 합쳐야 겨우 아마존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은 일단 아마존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마트는 아마존이 장악한 온라인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온다. 오프라인 업체는 무겁고 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아마존보다 더 공격적이고 싼값을 책정하는 역발상 전략을 핀다. 아마존에 열광하던 소비자들이 슬그머니 월마트를 찾기 시작했다. 월마트의 반격이다.
| 월마트의 분기별 전자상거래 매출 성장률(단위: 전년비 %), 자료=비즈니스인사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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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분기 월마트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늘어난 1233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객관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미국 내 기존 점포의 판매도 1.8% 증가했다. 12분기 연속 증가세다. 아마존의 융단 폭격 속에서도 월마트가 꾸준히 매출을 늘려갈 수 있었던 건 온라인 시장에서 월마트가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2분기 월마트의 온라인 판매는 60% 늘었다. 2분기에만 반짝 늘어난 게 아니다. 지난 1분기에도 온라인 판매가 63% 증가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고객들이 온라인 판매의 개선 노력에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승부수는 올해부터 도입한 무료 배송 전략이다. 아마존에서 이틀 이내에 배송되는 무료 서비스를 받으려면 ‘아마존 프라임’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연회비가 99달러(약 11만2000원)다. 아마존의 영화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무제한으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싼 가격은 아니다. 월마트는 ‘무료 배송’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35달러(약 4만원) 이상 물건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무료로 이틀 이내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월마트의 무료 이틀 배송은 미국 시장에서 파격적인 조치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 이틀 이내에 물건을 받으려면 보통 10~20달러가량 별도의 배송료를 지불해야 한다. 아마존처럼 연회비를 낸 회원들에게나 무료 배송 서비스를 하는 게 보통이다. 35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 전원에게 무료 이틀 배송을 선택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배송만 무료인 게 아니다. 제품 가격도 공격적으로 내렸다. 현재 4리터짜리 액상 세탁세제가 월마트에선 8.97달러에 팔리지만, 아마존은 같은 제품이 23.94달러다. 가격 차이가 15달러에 달한다. 이런 제품이 한 두개가 아니다. 제아무리 아마존이 온라인의 강자라고 하지만, 전체 덩치는 월마트가 아마존보다 3배가량 크다. 싼 값에 물건을 조달할 수 있는 구매력은 월마트가 앞서 있다.
싼 제품 가격에 공격적인 무료 배송 정책까지 더해지자 월마트의 온라인 판매가 폭발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다.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사업을 총괄하는 마크 로어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틀 배송서비스에 99달러나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월마트는 더 싸게 팔 것”이라고 말했다.
|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마크 로어 월마트 전자상거래 부문 최고경영자(CEO)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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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는 제트닷컴(Jet.com) 인수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해 8월 월마트는 생긴지 1년이 조금 넘은 신생 온라인 유통업체 제트닷컴을 무려 33억달러, 우리 돈으로 3조7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주고 인수했다. 50년이 넘는 월마트 역사에서 가장 큰 투자다. 월마트가 눈독을 들인 건 제트닷컴뿐이 아니다. 제트닷컴의 창업자인 마크 로어의 영입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마크 로어의 별명은 ‘아마존 킬러’다. 로어는 유아용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다이퍼스닷컴(Diapers.com)을 만들어 대박 신화를 일군 인물이다. 아마존은 다이퍼스닷컴이 급성장하자 다이퍼스닷컴을 아예 인수해버렸다. 이때 로어는 아마존에 들어가 2년간 일하게 된다. 로어는 아마존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로어가 아마존을 나와서 창업한 회사가 바로 제트닷컴이다.
제트닷컴은 시작부터 ‘아마존보다 더 싼 가격’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아마존의 배송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아마존보다 싸다는 점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연간 49.99달러의 회비를 받지만, 아마존보다 10~15%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구매수량이 많을수록 가격은 더 내려간다. 제트닷컴은 ‘온라인의 코스트코’로 불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월마트는 로어에게 월마트의 전자상거래사업 전체를 맡겼다. 로어는 제트닷컴 때처럼 가격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더 싼 가격을 무료로 배송하는 전략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제트닷컴의 가격 알고리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고객에게 가장 가격이 싸지는 물건의 수량과 배송기간을 조합해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로어는 모든 상거래의 핵심은 결국 가격 경쟁력에 있다고 믿는다. “월마트는 싸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는 게 그의 목표다.
월마트가 도입한 퇴근배송제 실험은 오프라인이라는 단점을 강점으로 바꾸려는 대표적인 시도다. 오프라인은 매장 관리비용과 인건비가 많이 든다. 온라인보다 비효율적인 게 보통이다. 골드만삭스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100만달러 매출을 올리는 데 평균 3.5명의 직원이 필요할 때 온라인 사업자는 4분의1 수준인 0.9명으로 같은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월마트의 매장은 미국 전역에 4만7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월마트는 미국 전역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미국 인구의 90%가 월마트 매장에서 10마일(16km) 이내에 거주한다. 이런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 전략이 퇴근배송제다.
퇴근배송제는 각 매장에서 근무하는 월마트의 직원이 퇴근길에 주문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아무리 빨라야 보통 이틀이 걸리는 미국 배송 시장에서 당일 배송이 가능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월마트는 현재 아칸소와 뉴저지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뒤 미국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로어 CEO는 “퇴근배송제는 월마트가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라며 “앞으로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꿔 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월마트는 배송 시스템을 더 강화하기 위해 차량공유업체 우버와도 손을 잡았다. 월마트는 신선식품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아마존이 온라인의 최강자라곤 하지만, 신속한 냉장배달이 필수인 신선식품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아마존이 유기능식품 유통업체 홀푸드를 인수한 것도 신선식품 시장을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한 시도다. 이미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월마트는 배송 문제만 해결하면 온라인 신선식품을 장악할 수 있다. 우버와 협력하는 이유다. 월마트는 애리조나주(州)의 피닉스와 플로리다주의 탬파와 올랜도, 텍사스주의 댈러스 지역에서 우버택시를 이용해 신선식품을 배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마이크 터너 월마트 부사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송하는 방법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이 오프라인을 넘본다면, 월마트는 끊임없이 아마존의 영역인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 인수도 적극적이다. 월마트는 올해 들어 온라인 구두판매업체인 슈바이(ShoeBuy)와 온라인 아웃도어 전문업체 무스조(Moosejaw), 온라인 의류판매회사인 모드클로스(ModCloth), 온라인 남성의류 전문업체인 보노보스(Bonobos)를 인수하는 문어발식 확장을 펼치고 있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서로가 되고 싶어 하는 아마존과 월마트 간의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유통업계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