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치료제가 국내제약 1위기업 결정한다

by천승현 기자
2015.09.25 02:55:00

녹십자, 국내 매출 1위 ''바라크루드'' 공동 판매
유한양행 판매 중인 ''비리어드''와 격돌
국내 제약 1위 경쟁 안갯속
"남의 제품으로 매출 경쟁" 비판도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지난 2011년 유한양행이 미국 제약기업 길리어드로부터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따내자 경쟁업체들은 한결같이 탄식했다. 비리어드는 국내 발매 이전부터 초대형 약물로 기대를 모으며 국내업체간 사전 판권 확보 쟁탈전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비리어드는 발매 직후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했고 지난해 유한양행의 첫 매출 1조원 돌파의 밑거름이 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녹십자(006280)가 이달부터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의 국내 영업을 담당키로 하면서 업계 1위 다툼이 혼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2007년 국내 출시된 바라크루드는 2011년부터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매출 1위를 독주 중인 대형 약물이다. 지난해 1531억원어치 팔렸다. BMS의 영업인력은 30여명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와 낮은 내성 발현율로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다국적제약사의 B형간염치료제 2종의 한국 시장 쟁탈전이 국내제약사 선두 다툼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셈이 됐다.

연도별 바라크루드·비리어드 매출 추이(단위: 억원, 자료: IMS 헬스)
국내 B형간염치료제 시장 판도는 바라크루드의 아성에 비리어드가 도전하는 형국이다. 비리어드는 미국에서 지난 2008년 8월 B형간염치료제로 사용허가를 받았지만 2001년부터 에이즈치료제로 사용된 약물이다.

국내 도입 시기는 바라크루드보다 다소 늦었지만 기존에 해외에서 수십만명이 10여년간 복용하면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받고 국내 시장에 입성했다.

비리어드는 지난 2012년 국내 시장 발매 이후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72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상반기에는 452억원어치 팔리며 전체 의약품 매출 4위로 껑충 뛰었다. 올해 1000억원 돌파도 유력하다.



비리어드의 성장은 지난 몇 년간 유한양행의 상승세에 기폭제가 됐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1년 옛 동아제약, 대웅제약, 녹십자 등에 이어 매출 순위 4위에 머물렀지만 비리어드를 비롯해 굵직한 도입 신약 판매에 나서면서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지난해에는 국내 제약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녹십자가 바라크루드를 장착하면서 유한양행(000100)과 B형간염치료제 시장에서 치열한 시장 각축전을 벌이게 됐다. 국내 제약업계 매출 순위에서도 유한양행의 3년 연속 1위 수성이 유력했지만 녹십자의 바라크루드 판매 개시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유한양행과 녹십자 모두 길리어드와 BMS로부터 제품을 구매해 직접 유통한다. 두 제품의 매출액이 양사의 매출에 100% 반영되기 때문에 B형간염치료제의 실적이 양사의 1위 경쟁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연도별 녹십자·유한양행 매출 추이(단위: 억원, 자료: 금융감독원)
녹십자 입장에선 바라크루드 판매로 유한양행을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다. 녹십자는 바라크루드 판매를 통해 산술적으로 올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작년 매출의 3분의 1 수준인 500억원 가량의 매출이 추가로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까지 연결 기준 유한양행(5140억원)과 녹십자(4828억원)의 격차는 312억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녹십자는 매년 독감백신이 팔리는 3·4분기 실적이 강세를 보여왔다.

다만 오는 10월 제네릭의 무더기 진입으로 바라크루드의 약가가 30% 깎이고 시장 점유율이 위축될 수 있어 당초 기대보다 녹십자가 확보하는 매출이 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바라크루드의 매출도 2012년 이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한양행 역시 비리어드 뿐만 아니라 고혈압치료제 ‘트윈스타’, 당뇨치료제 ‘트라젠타’ 등 다국적제약사들로부터 도입한 신약들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 1위 자리를 순순히 내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다국적제약사의 제품을 앞세운 1위 경쟁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제약사 맏형격인 상위제약사들이 자체개발신약이 아닌 다국적제약사의 제품을 팔면서 외형 확대 경쟁을 펼치는 것이 국내제약산업의 현 주소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