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X파일]①IT거물들 '은둔 경영'하는 까닭은

by김관용 기자
2015.08.21 00:20:48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인터넷·게임 업계에는 ‘의장님’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 대기업이었다면 ‘회장님’으로 불렸을 법 한데 이사회 의장으로 불린다.

인터넷·게임 업계 의장들은 전문경영인(CEO)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다. 공개석상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언론 노출도 극도로 꺼린다.

하지만 의장들은 호칭만 다를 뿐 대기업 오너들과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이를 대표이사의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상 회사의 주인은 의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은둔형 경영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네이버(035420)를 창업한 이해진 의장 역시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다. 김상헌 대표이사가 전문경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네이버의 모든 의사결정이 이 의장을 통해 이뤄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버 메일 서비스의 사용자화면(UI) 하나 바꾸는 것도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서비스 부분은 이 의장께서 애착을 갖고 있어서 직접 관여한다”면서도 “그러나 모든 경영 활동은 김 대표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서비스 부분을, 김 대표는 대외·재무 등의 경영 일반을 총괄하는 형태로 역할을 구분했다는 설명이다.

3년 전 네이버로부터 떨어져 나온 NHN엔터테인먼트(181710)도 독특한 의장 문화를 갖고 있다. 이준호 의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 변신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게임에서 이름을 바꾼 NHN엔터테인먼트는 주력 사업 분야인 게임에 힘을 빼고 전자상거래와 전자결제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 의장은 네이버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윤식 마케팅사업본부 총괄이사를 영입해 회사 변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또 네이버에서 퇴사한 김동욱 전 플랫폼 본부장을 영입해 간편결제 서비스인 ‘페이코’ 사업본부장을 맡겼다. 이 의장과 김 본부장은 NHN에서 관계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카카오(035720)의 파격적인 대표이사 교체 결정 역시 국내 인터넷·게임 업계의 ‘의장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회사 측은 이석우·최세훈 공동대표의 적극적인 추대로 35세인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가 차기 대표이사에 내정됐다고 밝혔지만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의 복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다음카카오는 지난 해 10월 합병 이후 옛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의 최 대표와 카카오 출신의 이 대표가 공동 경영하는 구조였다. 내부 업무는 최 대표가, 외부 업무는 이 대표가 총괄하는 형태다. 합병 모습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카카오를 흡수합병하는 모양새였다. 김 의장이 자신의 의지대로 회사를 이끌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전격적인 대표이사 교체는 ‘친정체제 가속화’를 위한 김 의장의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합병 이후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됐다는 판단에 따라 자신의 측근을 대표이사에 앉혀 김 의장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경영전략을 실현할 수 있게 했다는 것.

임 대표는 김 의장이 100% 지분을 투자한 케이큐브벤처스의 대표를 맡았다. 그가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수석심사역으로 일할 당시 김 의장의 눈에 띄어 대표 자리를 맡겼다는 후문이다. 김 의장의 경영 구상은 통합 2기 다음카카오에서 구체화 될 전망이다.

게임업계에서 의장의 파워는 더 막강하다.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이 대표적이다. 모바일게임 분야 1위 회사로 올라선 넷마블의 성공 뒤에는 방 의장의 적극적인 경영이 있었다. 2000년 넷마블을 창업한 방 의장은 CJ그룹에 회사를 매각한 이후 2006년 건강상의 이유로 공백기를 보냈다. 2011년 경영에 복귀한 그는 의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모든 게임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권영식 대표이사가 있기는 하나 중요한 결정은 방 의장이 한다. 직원들과 자주 만남을 갖는 방 의장은 술자리에서도 일 얘기만 하는 ‘워크홀릭’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영 로아컨설팅 대표는 “인터넷이나 게임업계 의장들은 등기임원으로 사내이사로 재직하고 있어 등기임원이기 때문에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면서 “전문경영인이 있는 상황에서 의장의 과도한 경영 개입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창업자로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회사가 옳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