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인터뷰]"연봉 2000만원이 적은가요?"..20대에 1억 모은 짠돌이

by성선화 기자
2014.04.22 06:10:00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무엇보다 그에겐 ‘패배주의’가 없었다. 자신이 처한 가난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 “등록금은 알아서 벌어라”라고 알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스스로 돈을 버는 법을 깨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대기업 계열사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대학 등록금을 못 대주는 집안 형편에 학자금 대출금을 받았고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기에 대기업에 취직을 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옭아맨 ‘패배주의의 덫’ 때문이다.

21일 서울 강남역 인근 모 커피숍에서 28세에 1억원을 모아 ‘짠돌이 카페’ 수기공모에 당선된 정솔(, 31)씨를 만났다. 최근 발간된 ‘돈이 모이는 생활의 법칙’ 저자 10명 중 20대 싱글 짠돌이로 소개됐다.

책에 소개된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대학 입학후 찹쌀떡 아르바이트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200만원을 모았고 군대에서 틈틈히 월급을 보아 100만원을 모았고 복학 전 700만원을 거머쥐었다.

복학 후에는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노래방 웨이터,패밀리레스토랑 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졸업 때까지 3500만원을 모았다. 졸업후 연봉 1800만원 짜리 회사에 취직해 28세에 1억원의 ‘거액’을 스스로의 힘으로 저축했다. 그는 “결혼식장 홀서빙, 청소, 좌담회 등 빌딩 유리창 닦기나 임상시험 빼거는 거의 모든 아르바이트를 해봤다”고 말했다.



과연 사람이 이렇게까지 살 수 있을까. 아마 그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접한 그의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발견한 결론은 ‘결핍의 승화’였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늘 부자들을 경멸하세요. 언론에 나오는 부자들의 부정적인 뉴스만 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제도 내에서 살아남아야죠.”

저소득층 부채 클리닉을 운영하는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김희철 대표는 연봉의 두배 이상의 부채에 허덕이며 빚을 지는 사람들은 연봉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이 연봉 2000~3000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솔씨에게 연봉 2000만원은 결코 적은 연봉이 아니었다.

“월급은 160만원 정도 돼요. 월급은 거의 대부분 저축하죠. 예전에는 아르바이트로 월급만큼 벌기도 했어요. 서른 살이 넘으면서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고 있지만요.”

대학교 입학 때부터 10년 이상의 아르바이트로 잔뼈로 굵은 그에게는 ‘알짜 아르바이트’ 노하우가 있는 듯 했다. 최근에는 주로 대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실험실 아르바이트, 좌담회, 대학원 논문 수정을 한다고 했다.

생활비는 거의 쓰지 않는다. 친척 집에 신세를 지고 있어 월세 지출이 없다. 하루 교통비는 2000원 정도다. 식비와 커피는 회사에서 해결한다. 옷은 거의 사지 않고 이발도 가장 저렴한 이발소를 찾는다. 운동도 한달에 1만원 정도인 대학교 피트니스를 활용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독하게 만들었까. 그는 “결핍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고교시절 기초수급 대상자였던 그는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을 들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게 무척 부끄러웠다. 그때 스스로 부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읽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그에게 새로운 혜안을 선사했다.

고등학교 때 80kg까지 나갔던 몸무게를 70kg까지 뺀 것도 안면도 없던 한 여학생의 놀림 때문이었다.

“그때 빨간 목티를 입고 있었는데 저 보고 ‘빨간 목티 입은 돼지 아저씨’라고 불었어요. 그날 이후 충격을 받고 독하게 10kg을 뺐어요. 지금까지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는 “달성하겠다고 정한 목표는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고 말했다. 스스로 약해질 때면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노숙자처럼 되지 않으면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노숙자들도 처음부터 노숙자는 아니었어요. 그들에게도 다 사연이 있죠. 우리와 전혀 다른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가끔씩 노숙자들와 대화를 나누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남들은 대화조차 섞기도 꺼리는 노숙자와의 대화. 그는 남다른 적극성이 있다. 최근 50회 이상 헌혈을 했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물론 보기 좋게 거절당했지만, 그는 계속 시도하면 언젠가는 만나 줄 것이라고 했다.

정씨가 직접 만든 다큐멘터리에는 그의 적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4년 이상 장애인 봉사활동을 했고 꾸준히 멘코와 멘티 활동 중이며, 조만간 어머니와 함께 히말라야 등반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그의 목표는 35세까지 4억원을 모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침마다 20분씩 경제신문을 읽는다.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남들은 투자를 위해 경제뉴스를 읽는다고 하지만 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읽습니다. 경제 신문을 꾸준히 읽은 덕분에 엄청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죠. 동양그룹 사태 때도 뉴스에서 지속적으로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위험을 감지하고 사고가 터지기 전에 동양그룹 회사채를 팔았습니다. 동양 사태 피해자들을 보면 대부분 경제 뉴스에 민감하지 않은 주부와 노년층이었죠.”

정 씨는 안전한 회사채 투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회사채 중에서도 금리가 가장 높은 채권을 선택한다. 리스크가 높은 만큼 철저한 조사를 한다. 최근 만기된 동부제철 회사채는 연 8%의 이자를 제공했다. 그동안 모은 1억원을 넣어두면 연 이자 소득만 1000만원 가까이 된다.

그가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차이나펀드의 충격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0만원을 차이나펀드에 넣었다가 아직까지도 원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꼭 한번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계부를 쓰는 셈이다. 그리곤 이번달에 들어올 월급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는 최근 몸에 밴 ‘짠돌이 관성’에서 탈피해 베푸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나이에 걸맞게 쓸 줄 알아야 한다”며 “돈을 벌면 벌수록 거기에 맞게 사람의 그롯도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