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14.01.07 06:05:03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미친듯이 돈을 찍어내고 있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에 비하면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 사용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엄격한 재정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단일통화 사용을 앞당기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요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비트코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싹을 미리 자를 이유가 없다.”
미국내 대표적 재정분야 전문가로 파산위기에 내몰린 미국 상황을 지켜보다 못해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로렌스 J. 코틀리코프(63) 보스턴대 교수는 비트코인에서 오히려 희망의 단초를 보고 있었다.
그는 미국 재정을 근본적인 수술을 받아야할 암(癌)환자에 비유하고 “정치권이 대타협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미국은 장기적으로 파산 위협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대선 출마에 따른 엄청난 자금 부담을 토로하면서 이같은 미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대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다음은 코틀리코프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어떤 경제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
△재정정책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다. 미국에서 재정적자 문제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집중하고 있고 같은 이슈를 두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경제권과도 비교해서 연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정과 관련해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조세정책을 어떻게 쓸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미국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확대에 대해 그동안 큰 우려를 표명해온 것으로 안다. 특히 최근 복지분야 재정지출 확대와 맞물려 이런 우려가 더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현 재정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보건복지 분야를 뜯어 고쳐야 한다. 오바마케어의 정신을 반영하면서 개인들의 자유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지분야을 개혁하는 게 시급하다. 세제에서도 소득세를 낮추는 대신 부가가치세를 높이고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 지출에도 세금을 매기는 등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 개혁 방안은 내 주장을 담은 웹사이트(www.thepurplrplans.org)를 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
-미 의회가 2014~2015회계연도 예산안에 합의했다. 2년간 협상 이후 처음 나온 합의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물론 미국을 당장 최악의 상태로 빠뜨리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 ‘그랜드 바겐(대타협)’까지는 아니지만 ‘빅 딜’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부 세수를 늘리고 보건복지 지출을 일부 조정하는 등 그랜드 바겐을 마련해야할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암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는 암을 고치기 위해 대수술을 해야할 상황과 마찬가지다. 이번 예산안 합의는 당장 환자 목숨을 위협하던 악성 종양 하나를 떼어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종양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종양은 다시 온 몸으로 전이될 것이고 환자는 죽어버릴 것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신속하면서도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
-‘근본적인 수술’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말 그래도 대수술이라는 뜻이다. 종양은 발병한 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여러 장기로 퍼져 간다. 종양이 발병한 곳은 물론 전이된 장기들을 모두 깨끗하게 만드는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미국은 장기간 경기 침체와 그 시기의 세제 감면 확대로 줄어든 세수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침체기 기업부문이나 고소득층으로부터 세수를 얼마나 더 걷을지 결정해야 한다. 또 늘어나는 보건복지 지출을 어떻게 조절하고 장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정치인들이 아닌 경제학자가 정부를 운영해야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나.
△정치인들은 심각한 현재 상황에 대해 사실을 말하지 않다는 게 큰 문제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지 못한다. 미국의 소셜 시큐리티(사회보장) 지급금과 연금체계는 물론이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전반적인 보건복지 체계 등이 모두 통제 불가능한 상태다. 이렇게 가다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파산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졌고 이를 국민들에게 환기시켜주기 위해 출마했다.
-미국의 파산위기는 여전하다고 보는가.
△최근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복지 프로그램을 위해 지출해야할 재정 부담액과 앞으로 거둬 들일 세금 수입간 차이를 말하는 재정 갭(Fiscal Gap)이 211조달러(약 22경3850조원)에 이른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4배 수준으로 다른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보다도 높다. 경제를 개혁하지 않고 이 갭을 줄이려면 모든 연방 세금을 영구적으로 64% 인상하고 연방정부의 비(非)이자지출을 40% 삭감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정치권이 대타협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미국은 장기적으로 파산 위협에 처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음번 대선에 또 출마할 의사는 있나.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선에 출마한다는 건 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한다. 다시 출마하기 전에 일단 백만장자가 되는 게 나의 목표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게 짧은 시간내 불가능할 것 같다. (웃음) 물론 후원자가 있다면 재출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경제학 교수인 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겠는가.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 출마할 뜻은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큰 도전일 것 같다.
-최근 주요 경제지표들이 살아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오랫동안 끌어온 테이퍼링(양적완화(QE)축소)을 이번주에 시작했다. 앞으로 연준 통화정책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르면 지난해 12월중에 테이퍼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이나 고용이 충분한 회복을 보이고 있는 만큼 굳이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돈을 더 찍을 필요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울러 지금은 잠복돼 있지만 계속되는 QE로 언제 인플레이션이 급격하게 뛸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미 실물경제 기저에는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이 싹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한 테이퍼링을 시작한다고 해서 당장 연준 유동성 확대 기조 자체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저금리는 장기간 더 이어질 것이고 자산매입 규모가 조금 줄어든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연준이 테이퍼링을 시작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는가.
△일단 테이퍼링이 시작되고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상승할 경우 미국 시장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상대적인 고수익을 노리고 한국 등 이머징 마켓으로 향했던 미국 투자자금들이 회수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단기적 충격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자금들 가운데 상당 수는 지속적으로 그 시장 내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어 테이퍼링으로 다시 이머징 마켓 내에서 안전한 시장과 그렇지 않은 시장간에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테이퍼링 충격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당신의 저서 ‘다가올 세대의 거대한 폭풍’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도 경제성장 감속, 고령화와 저출산, 소득 불균형 등으로 재정지출 부담이 커지고 있다. 건전한 재정을 지속할 수 있는 비법을 무엇인가.
△한국의 세제나 복지제도 등을 구체적으로 알수 없지만 앞서 미국에 대해 조언했던 것처럼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복지체계와 세금제도를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재정여건은 미국에 비해 훨씬 양호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이미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늦은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된다. 다만 현 시점에서 또다시 내일로 늦춰선 안된다. 그럴 경우 미국처럼 더이상 제어하기 힘든 상황까지 내몰릴수 있다. 방만한 재정과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을 후세에 미루는 것은 세대간 충돌을 야기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짓이다.
-최근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는 경계의 목소리도 내놓고 있다.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나 저우 샤오찬(周小川) 중국 인민은행 총재 등이 비트코인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부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 언론이 선정적 제목으로 비트코인의 익명성과 투기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연준이나 일본은행, 유럽중앙은행(ECB)들은 미친듯이 돈을 찍어내고 있다. 이에 비하면 비트코인 사용은 오히려 이같은 무분별한 통화 공급을 제어하고 엄격한 재정관리를 이끄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또 비트코인 사용에 따른 돈세탁 우려도 있지만 만약에 있을 돈세탁을 걱정해 실제 현금 사용을 막지는 않는다. 정부나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 확산으로 자신들의 세금 징수나 유동성 공급 능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용이 더 늘어난다면 어떤 나라도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몰아가긴 어려워질 것이다. 아울러 향후 주요 경제권에서 단일 통화 사용을 앞당기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과거 경제사를 보면 가치있는 경제적 혁신은 항상 처음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결국 자리를 잡았다. 비트코인도 향후 주요한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기회의 싹을 미리부터 자를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