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영훈 기자
2013.10.10 06:00:00
조영훈 부국장 겸 금융부장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는 사건이 ‘97년말 IMF 외환위기’다. 데스크 입장에서 용어설명 또는 한글 표현을 찾도록 지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거의 유일무이하게 ‘IMF위기’는 ‘국제통화기금 위기’라는 한글 해제가 필요없이 고유명사가 돼버렸다.
그보다 강도는 덜하지만 2003년 카드사태와 최근의 저축은행 집단 퇴출, 그리고 리먼 사태 이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비슷한 맥락으로 벌어진 사건들이다.
2013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공급과 해결을 과제로 미국의 ‘셧 다운’ 이벤트로 다가오고 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동양 사태’가 리먼 사태 이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인 셈이다.
동양사태와 관련, 혹자는 기업어음(CP)에 투자한 4만7000명 투자자는 부유층이기 때문에 저축은행 퇴출 당시 예금자들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높은 금리를 줄때는 그게 리스크 프리미엄인 줄 알고 투자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취재 일선에서 바라본 동양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베이비 부머’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40~60대들이 동양그룹 CP를 매입한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민원 접수 결과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산업화를 이끌었던 베이비 부머들은 투자성향이 그만큼 공격적이라는 얘긴가. 그렇지는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역설적으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 프리미엄 금리인 것을 알면서도 동양 CP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CP가 단기상품인 만큼 ‘설마 몇 달안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하는 생각으로 투자했을 것이다.
형식 상 완벽한 투자권유서류 앞에서 이들이 법원에 제기할 ’불완전 판매‘ 민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짐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법원이 키코 사태때 사실상 은행 편을 들어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만큼 먹고살게 만들어준 베이비 부머’ 선배들에게는 미안한 감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인의예지’세대이자 자녀로부터 봉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얘기한다. 흔한 말로 팔자란다.
기초 노령연금이 화두다. 적자재정까지 나라 경제의 주름살을 더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런 위험한 투자를 했을까. 다름아닌 ‘공포의 5년’이 화근이다. 정년 연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근로자 대다수의 정년은 55세. 길어야 60세다.
국민연금 수급기간은 점차 길어져 대다수 국민은 65세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그때까지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다. 유일한 대안은 그나마 집 한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을 찾는 것. 공무원·선생님·군인 등 연금 수혜자를 제외한다면 국민 대다수는 그 시간을 대비해야 한다.
은행부터 보험사까지 대다수 금융기관은 그 시간을 넘길 수 있는 별도(?)의 종자돈을 만들라고 한다. 동양 그룹의 기업어음을 제일 많이 매입한 사람들이 베이비 부머들인 이유다. 물론 우리보다 초고령화가 먼저 시작된 일본도 이제야 겨우 정년 65세를 법제화했다. 다양한 해법이 있겠지만 정년 연장과 함께 그냥 무작정 나눠주는 기초연금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