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춘동 기자
2011.01.29 08:20:00
구제역 태풍 전국 초토화..축산업 기반 뿌리 채 `휘청`
물가불안과 지역경제 위축 초래..GDP 직접 영향은 미미
[이데일리 김춘동 기자] 구제역 태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정부가 예방접종과 함께 전방위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구제역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미 제주와 전라를 제외한 전국에서 280만마리 이상의 가축이 속절없이 땅에 묻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축산업의 기반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보상비 지급에 따른 막대한 재정소요는 물론 물가불안과 지역경제 마비 등의 부작용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구제역은 작년 11월29일 처음 확인된 후 무서운 기세로 전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전국 광역시도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지난 두 달간 전국 5000여 농가에서 살처분돼 매몰된 가축만 282만마리를 넘어섰다.
돼지가 267만마리로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전체 돼지의 25%를 넘는 엄청난 숫자다. 조류 인플루엔자(AI)는 닭과 계란, 오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가 지불한 보상비만 1조7000억원을 넘어섰고, 방역 등의 과정에서 지자체가 지출한 비용까지 합하면 피해액은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급기야 `한국내 구제역의 확산 정도는 지난 50년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면서 한국발 구제역 주의보를 내렸다. 주무부처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초동대처 미흡을 이유로 장관직 사퇴를 천명했다.
구제역의 창궐과 함께 우선 국내 축산업의 기반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경기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경우 전체 가축의 60%이상이 살처분되면서 축산기반이 거의 붕괴 직전이다. 횡성과 대관령, 안동한우 등 고급육 브랜드의 이미지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축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면 대부분의 육류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수입가격 상승은 물론 유사시 공급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다만 대규모 살처분이 당장 직접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DP상 축산업 생산은 특정기간 가축의 순증과 도축 숫자를 합해 사료비 등 비용을 제외한 개념이다.
따라서 구제역에 따른 대규모 살처분은 축산업 생산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GDP 집계를 위한 국제기준은 대규모 자연재해 등으로 특정시기에 충격이 집중될 경우, 가축의 생존기간과 도살연령 등을 평균해 일정기간 동안 피해를 나누어 반영하도록 돼 있다.
한꺼번에 GDP에 반영되진 않는다는 의미다. 게다가 우리나라 GDP에서 축산업은 물론 농림수산업 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대에 불과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백신과 방제업체의 경우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면 물가불안은 보다 직접적인 위협요인이다.
과거엔 구제역에 따른 살처분 시기엔 오히려 육류의 가격이 떨어졌다. 절대적인 소비량 자체가 크게 줄었던 탓이다. 하지만 최근엔 그 동안의 학습효과로 소비가 크게 줄지 않는 가운데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실제로 돼지고기의 경우 최근 kg당 평균 도매가격이 작년 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구제역 위험으로 전국 대부분의 도축장이 문을 닫으면서 유통망 자체가 마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도매가격의 급등은 소매가격은 물론 돼지고기를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연쇄 물가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돼지고기의 경우 물가산정시 차지하는 비중이 0.0075%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배추파동과 마찬가지로 외식은 물론 우리나라 식탁에 가장 자주 오르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물가불안 심리를 크게 자극할 수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돼지고기에 대한 수입관세를 없애고, 수입량도 늘리기로 했지만 당장 가격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생닭과 달걀값도 이미 들썩이고 있다.
구제역 여파로 지역축제 등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주요 관광지를 비롯한 지방경제에도 일정정도 타격이 예상된다.
정육점을 비롯한 도소매업이나 해당 지역의 음식숙박업이 위축되면서 서비스업 생산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유엔이 한국을 `구제역 상재국`으로 규정하면서 여행업의 위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융시장도 구제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7일 돼지고기를 대상으로 한 돈육선물 거래가격은 ㎏당 7050원으로 2008년 개장 이래 사상최고가를 기록했다. 작년 11월과 비교하면 80% 가까이 급등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도 돼지고기 선물가격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탓이다.
수입육 유통업체와 닭고기 생산업체 등 관련기업의 주가 역시 구제역 파급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크게 요동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