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마저 "파산 가능성" 거론

by하정민 기자
2005.10.11 05:25:24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주식회사 미국(Corporate America)`의 자존심이자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가 휘청이고 있다.

GM의 실적 악화는 전혀 새롭지 않은 소식이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한때 자회사였던 미국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델파이의 파산보호 불똥이 GM으로 옮겨붙고 있기 때문이다.

델파이와 GM의 밀접한 관계가 집중 부각되는 가운데, 시장 한켠에서는 GM의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흉흉한 분위기를 돋우기라도 하듯 국제 신용평가기관 S&P는 10일(현지시간) GM 회사채 신용등급을 추가 하향했다. 치솟는 고유가로 GM의 주력 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도 싸늘하고 도요타를 비롯한 아시아 자동차의 공세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위기의 GM, 델파이 파산까지 겹쳐

델파이는 지난 1999년 GM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이후에도 노사관계 등 각종 측면에서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다.

델파이의 최대 고객인 GM은 분사 당시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퇴직연금 수급을 책임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조약이 부메랑이 돼서 GM에게 돌아왔다. 델파이 노조원의 퇴직연금 수급으로 GM이 책임져야 할 부담이 11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GM은 "델파이 노조원의 연금수급 책임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지만 불안해진 투자 심리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다. `퇴직금 대신 갚아주기`의 문제를 떠나 델파이 파산으로 GM이 구매해야 할 부품의 공급차질이 발생하고 부품 구입 가격이 오를 위험도 여전하다.

현재 GM의 경영 상황은 극도로 나빠진 상태다. 올해 상반기 북미 사업 부문에서만 무려 25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하반기 영업 상황도 신통치 않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GM의 미국 내 판매는 전년동월비 24% 급감했다.

재무적 손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GM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말 피치는 올들어 두 번째로 GM의 신용등급을 하향했고 이날은 S&P도 가세했다. S&P는 GM 회사채 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추가 하향했다. 문자 그대로 쓰레기 수준의 등급을 받은 셈이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심각하게 커지고 있다.

◆강성노조, 전략실패, 고유가 등이 원인

GM의 위기를 가져온 요인은 강성 노조, 미래 전략 실패, 고유가 등으로 크게 요약할 수 있다.

현재 GM은 차를 한 대씩 만들 때마다 1600달러 정도의 `유산 비용(legacy cost)`을 지급하고 있다. 종업원은 물론 퇴직자와 그 가족들까지 받는 의료 보험 및 연금 혜택이 바로 유산 비용의 정체.

게다가 노조와 맺은 노동계약 때문에 경기 상황에 따라 신속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힘들다. 젊고 비노조화된 일본 자동차업체들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의 수요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차량 등 미래 연료절약형 차량 개발에 힘을 기울일 때 GM은 연비가 떨어지는 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생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급격한 유가 상승을 맞아 소비자들은 대형 SUV 차량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GM은 직격탄을 맞았다. 거듭되는 할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차가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점은 최근 GM의 점유율 하락이 잘 설명해준다.

반대로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주요 아시아 업체들은 매월 10%가 넘는 매출 신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는 주문 후 몇 달씩 기다려야 차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빅히트를 치고 있다.

◆GM 진짜 파산위기 처할까..가능성 논의 분분

이날 BOA 증권의 로널드 태드로스 애널리스트는 "GM의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을 기존 10%에서 30%로 세 배 높인다"고 밝혀 금융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그는 델파이 부담으로 GM은 노조에 대한 건강보험 삭감 요구를 강화하겠지만, 노조는 이에 격렬히 반발할 것이 뻔하므로 영업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BOA는 GM의 투자의견도 `중립`에서 `매도`로 낮췄고 12개월 목표가는 32달러에서 18달러로 대폭 하향했다.

물론 BOA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번햄 증권의 데이빗 힐리 애널리스트는 "GM의 파산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그는 "보유 현금과 동원할 수 있는 자금까지 합치면 GM의 유동성은 500억달러가 넘는다"며 "이렇듯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쉽게 파산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힐리 애널리스트는 "설사 GM이 델파이 때문에 110억달러를 지출한다 해도 유동성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세계 1위라는 GM의 입지는 여전히 굳건하고 재무구조도 나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델파이의 구조조정이 장기적으로는 GM이 낮은 가격에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 넘겨도 위상 악화는 불가피

많은 전문가들은 GM이 이번 위기를 이겨낸다 하더라도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라는 GM의 위상 및 브랜드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2002년 초 70달러에 육박하던 GM의 주가는 현재 26달러대로 곤두박질쳤고 언제 반등할 지도 불투명하다. 주가 급락에 따른 시가총액 감소도 심각하다. 현재 GM의 시가총액은 160억달러 정도로 도요타의 8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도요타는 커녕 매출 규모가 GM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오토바이 생산업체 할리 데이비슨에게까지 시가총액을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은 지 오래다. 심지어 GM의 시가총액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 총액(323억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브랜드 가치도 마찬가지다. UBS의 롭 힌클리프 애널리스트는 "GM 차의 품질은 나아졌지만 GM 제품을 꼭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었던 아이아코카는 최근 "미국 자동차업체의 위기가 GM으로부터 비롯됐다"며 GM을 강력 비판했다. 아이아코카는 "GM이 스포츠형 자동차인 허머 브랜드에 집중 투자하고 연료 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을 미룬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며 "도대체 신형 폰티악이나 뷰익으로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며 GM을 맹비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