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상석 기자
2002.03.04 08:19:12
[edaily=뉴욕] 과거 60년대와 70년대, 미국에서 한참 진행됐던 "소비는 미덕"이라는 캠페인이 우리의 눈에는 참으로 기괴한 논리로 비춰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정부는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강조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처럼 자본축적이 성숙기에 도달한 경제는 충분한 공급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지출이 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당시 한국의 경우에는 공급능력 자체가 워낙 취약한 상황에서 자본축적이 경제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자금확보가 급선무였다. 이제는 한국도 소비가 미덕인 상황이 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미국경제도 서서히 불황기를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주말 발표된 1월중 개인 소득 및 지출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미 상무부는 1월중 저축률이 12월의 1%에서 1월에는 1.8%로 높아졌다고 발표한다. 이는 단순히 가처분소득에서 지출을 하고 남은 부분의 증가율을 계산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계산되는 저축률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저축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번 만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높아진 저축률이 미국의 경기회복을 그만큼 더디게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경기회복이 상당히 지지부진한 패턴으로 전개될 것임을 의미한다"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1.6%였던 저축률이 내년에는 2.9%로 뛰어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90년대 미국이 장기호황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저축률은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이에 대해 미국 증시의 장기 랠리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자산가치의 증대로 인해 소비자들이 저축할 유인을 찾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콜롬비아대학의 미쉬킨 교수는 "자신이 부자가 됐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저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쉬킨 교수는 높아진 저축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와 장기적으로 차별화된다고 주장한다. 저축은 퇴직이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의 보험역할을 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투자재원으로 작용하게 되지만 경제가 불황에 빠져있을 때는 경기회복을 위해 저축률이 낮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저축률이 과거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투자재원의 부족과 같은 문제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쉬킨 교수는 "그동안 국내 저축의 부족을 외국계 자금유입으로 충당됐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이같은 현상이 마냥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축률의 상승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기적으로 저축률의 상승은 경기회복의 속도를 더디게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